검찰은 이들에게 포섭된 군장병이나 지역당원, 소조책(말단조직원) 등으로 활동한 지자체장, 정당인 등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할 방침이다.

25일 검찰에 따르면 1980년대 주사파였던 김씨는 90년대 초 북한 225국에 포섭돼 ‘관덕봉’이라는 대호명을 부여받았다. 대호명은 비밀공작활동에서 보안유지를 위해 쓰는 고유명칭이다.
김씨는 학교후배 임씨와 대학동창 이씨를 포섭해 각각 ‘관순봉’, ‘관상봉’이란 대호명을 받게 했고, 2001년 3월 왕재산을 구축했다. 이후 ㈜코리아콘텐츠랩 등 2개 벤처회사를 설립했고, 2005년에는 인천지역당인 ‘월미도’와 서울지역당인 ‘인왕산’을 결성했다.
이들은 용산·오산 미군기지 및 주요 군사시설 등이 포함된 위성사진과 미군 야전교범 등 수집해 대용량 외장 하드디스크에 담아 통째로 북한에 넘겼다. 감시의 눈을 피해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제3국에서 225국 공작조를 34번이나 만나 지령을 받았다. 225국 지령은 갈수록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김씨 등은 ‘인천 저유소와 공업단지, 군시설 등을 2014년까지 폭파하기 위해 핵심성원 1∼2명을 배치하거나 경비원·장교 등을 매수하라’는 지령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에는 인천 남동구, 남구, 동구를 거명하면서 지역행정기관과 방송국 등을 유사시에 장악하도록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유사시 200여명을 동원할 수 있다’고 북한에 보고했지만 실제 폭파 음모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적발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보법 폐지 촛불집회와 맥아더 장군 동상철거,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시위 등에도 참가했다. 유씨를 제외한 4명은 간첩활동 공로로 훈장을 받았고, 김씨와 임씨는 과거 민정당사 투석과 반미구국학생동맹 활동으로 사법처리됐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형사보상금까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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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에서 검찰 관계자가 ‘왕재산’ 사건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
김씨 등은 국내 정치인들의 동향을 북한에 수시로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청와대·정부 관계자들과 정치권 내부 동향 등 정세정보를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았다”며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통상적으로 알 수 있는 정치인의 신상 외에 성향 등 구체적 내용이 북한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왕재산을 통해 남한 선거에 개입하려 한 정황도 포착했다. 검찰은 그 근거로 2007년 대선과 지난 4월 재보궐선거 시점에 하달된 북한 지령을 공개했다. 조직원을 정치권에 직접 침투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서울지역책 이씨는 정치권 내 지위 확보를 위해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무비서관으로 근무한 데 이어 18대 총선 출마를 위해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이날 “국정원의 인권 침해, 강압수사로 물의를 빚은 이번 사건은 레임덕과 정권교체 위기에 놓인 이명박 정권의 정국돌파용 공안사건”이라며 “실체가 없는 조작 사건인 만큼 법원에서 진위가 가려질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정재영·장원주 기자
225국=조선 노동당 대외연락부 후신으로 남파 간첩 침투, 지하당 구축 등을 주임무로 하는 대남공작 부서다. 공작원을 남파해 남한에 지하당을 만든 뒤 혁명 가능성이 커졌다고 판단되는 시기에 지하당을 매개로 남한 체제를 전복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지하당 구성원으로 남한 내 정계·군부·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를 포섭해 국가기밀을 수집하는 한편 북한 체제와 김정일 일가 선전 등의 책임을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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