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다는 개인 블로그에서 이렇게 썼다. “방송국은 나의 베트남전쟁 반대 입장을 비판하고 내가 출연할 경우 시청 반대운동을 벌이겠다고 위협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나는 풍부한 자금으로 조직된 일부 과격 정치단체들의 이런 비이성적인 압력에 QVC가 굴복한 사실에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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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T 쿠너 美 에드먼드버크연구소 총재 |
현대 신좌익의 기반이 된 진보의 신화는, 60년대가 자유 및 사회 정의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모든 해방운동, 즉 동성애자의 권리, 다문화주의, 급진적인 여권운동이 격동의 60년대에 탄생했다. 이 운동의 핵심에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대가 자리 잡고 있다.
평화주의자들은 전쟁 개입이 미국의 근원적인 죄, 즉 인종차별, 제국주의, 군국주의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수치스러운 패전만이 미국의 배타적이고 사악한 본성을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폰다를 비롯한 반전운동가들이 베트콩의 승리를 지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폰다와 빌 아이어스 및 버너딘 돈과 놈 촘스키 같은 급진분자들은, 베트남전쟁이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를 드러낸 결정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반전운동이 공상적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촉매이며 전위대라고 그들은 말했다.
따라서 폰다는 단순한 반전운동가가 아니라 자칭 혁명가였다. 그는 1972년 하노이를 방문하여 노동자 천국 월맹을 공개적으로 찬양하고 미군 전투기를 겨냥한 대공포 위에 올라가 미국인 살해에 환호했다. 그의 행동은 적들을 도왔다. 그의 의도는 미국 국민의 사기를 꺾고 참전의 명분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결국 좌익이 성공했다. 미국은 철수했고 전쟁에서 졌다. 월남은 공산세력에게 점령당했다.
진보세력은 베트남전쟁이 60년대의 영웅적인 투쟁이라고 미화한다. 그들은 미군 철수로 인도차이나에 평화와 안정이 실현되었다는 거짓되고 사악한 주장을 한다. 실제 벌어진 상황은 그 정반대였다. 월맹의 승리로 대학살이 촉발되었고 공산군은 10만명의 민간인을 즉결 처형했다. 월남의 화교사회는 완전히 말살되었고 독재국가가 수립되었다.
150만명의 보트피플이 월남을 탈출하여 많은 사람이 험난한 바다에 빠져 죽었다. 공산세력에게 넘어간 캄보디아에서는 월맹의 지원 하에 크메르루주가 20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미국의 패전은 ‘킬링 필드’로 가는 길을 열었다. 폰다는 이런 사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폰다는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배우가 되어 에어로빅 체조 비디오를 팔아 거액의 돈을 벌었다. 대부분의 신좌익 운동가들과 마찬가지로 폰다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헐뜯으면서 그 혜택을 탐욕스럽게 누렸다. 입으로 사회주의혁명을 떠드는 그는 얄팍한 소비주의에 영합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폰다는 60년대 좌익의 윤리와 지적인 파산을 상징한다. 그들의 핵심 이념은 미국에 대한 증오로 압축된다.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현대 정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란 사실을 그들은 부정했다.
폰다의 반역행위와 수치스러운 과거 행적 때문에 시청자들이 그의 QVC 출연에 반대했다. 그가 오해를 받는 억울한 평화운동가란 허위 이미지를 계속 선전하는 한 이런 반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와 급진주의자들의 행동이 고귀하지 않다는 사실은 베트남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프리 T 쿠너 美 에드먼드버크연구소 총재
워싱턴 타임스·정리=오성환 외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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