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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철의 시네 리뷰] '마당을 나온 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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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28 21:24:44 수정 : 2011-07-28 21: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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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서로를 사랑할 수는 있다”
황선미의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대도 컸지만 그보다는 우려가 앞섰다. 그 이유는 원작이 갖고 있는 철학적 주제 의식이나 문학적 서사구조가 과연 애니메이션에 적합한지 확신을 갖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원작의 캐릭터들이 구축한 깊이를 애니메이션에서 어떻게 소화해낼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기에는 상업적 위험요소가 너무 많아 보였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많은 변형을 가한다면 원작과는 전혀 다른 별종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었다.

원작,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이미 걸작 동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좋은 동화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를 뛰어넘는 재미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 편의 이야기로서도 완결적이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중층적인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 풍부한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간단치 않은 철학적 문제의식과 사회적 리얼리티, 그리고 인간과 자연을 아우르는 근원적 사유가, 잘 짜인 문학적 우의구조의 바탕 위에 치열하게 펼쳐지는 작품이다.

이 같은 원작의 탁월함과 유명세가 과연 득이 될 것인가, 아니면 독이 될 것인가. 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태어난 오성윤 감독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애초부터 탄탄한 ‘원작’을 기반으로 하여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인 스토리와 시나리오 문제를 극복하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그러니 원작이 독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영화의 중심 전략은 원작의 메시지를 최대한 존중하고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기본 틀을 유지하며 상업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돼 보이는 전략의 성공 여부가 결국 이 작품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다.

이 영화는 원작이 지닌 분위기보다는 훨씬 밝고 경쾌하게 진행된다. 잎싹(문소리)이나 나그네(최민식), 초록(유승호)과 같은 캐릭터들은 원작의 느낌보다 더 극화된 이미지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가벼운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고 작화 면에서도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개성이 부족해 보이지만 이 영화가 원작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려는 작품이 아닌 바에야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래도 세계적인 생태습지 우포늪을 실제 모델로 삼은 배경 작화의 수준은 여느 애니메이션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동화에서 절대적으로 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도약하기 위해 원작에 없던 캐릭터(수달, 박철민)의 창조, 스토리의 간소화, 역동적인 스펙터클 등 몇 가지 중요한 장치를 활용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체로 스토리의 연속성과 오락성을 극대화하는 데 쓰인다. 문장이 활동그림으로 변하면서 원작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박진감을 얻게 된 것은 틀림없다. 물론 이 경우에는 관객의 취향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이 영화에 원작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원작의 중요한 메시지를 포기하거나 뒤틀지는 않는다. 오히려 원작을 접하지 못한 관객들에게 삶과 죽음, 자유의지와 소통, 희생과 구원에 관한 울림과 성찰을 이끌어내는 데 모자라지 않는다. 어쩌면 원작에 비해 훨씬 쉽고 간결하게 접근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다르게 생겨서 서로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지만 사랑할 수 있다”는 대사처럼 사랑과 우정은 다름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먹듯이 남을 살리기 위해 내가 먹힐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최근에 자신의 광기를 못 이기고 뭇 생명을 도륙한 노르웨이의 한 청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 영화 주인공, ‘잎싹’이의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우리가 발견해야만 할 진짜 중요한 가치는 이와 같은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확실한 즐거움이다.

교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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