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등 대규모 자본 북미게임사들도 ‘위협’ 요즘 온라인 게임은 화려한 그래픽과 음향 효과를 자랑하지만 15년 전에는 ‘공격’ ‘이동’ 등 명령어를 마우스가 아닌 키보드를 이용해 직접 타이핑해야 했고, 심지어는 게이머가 조종하는 캐릭터는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PC 운영체제를 쓰는 것처럼 게임도 텍스트를 통해 이뤄졌다. ‘바람의 나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작가 김진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으며, 고구려 초기 시대를 배경으로 영웅이 돼 싸움을 벌인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는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바람의 나라’가 서비스된 지 올해로 1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온라인 게임의 ‘메카’로 세계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성장세가 매우 위협적이고 북미 업체들의 도전도 거세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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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 캐릭터 일러스트 |
바람의 나라 제작사인 넥슨은 서비스 15주년을 기념해 최근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MMORPG란 ‘검사’ ‘주술사’ 등을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다른 이용자의 캐릭터가 힘을 합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싸움을 벌이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는 그래픽 기반의 온라인 게임 중 하나다. MMORPG는 지금은 널리 쓰이는 게임 용어지만 바람의 나라가 등장할 당시 존재하지도 않는 개념이었다.
한 게임이 15년이나 서비스되는 것도 유례를 찾기 힘들지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이 게임이 세계 최초의 그래픽 기반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이다. 넥슨은 6월 기네스협회에 바람의 나라를 최초의 상용화된 MMORPG로 인증받기 위한 신청 작업을 마쳤다.
바람의 나라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생소했고 일부 게임도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바람의 나라를 통해 그래픽으로 캐릭터가 등장하고 온라인에서 다른 게이머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게임 업계의 혁명과 같았다.
한국에서 잉태된 온라인 게임은 그 후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정책과 맞물려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8년 PC방이 등장하고 바람의 나라에 이어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서비스를 시작했고, 게임상에서 만난 남녀가 실제로 결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블리자드사의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도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프로게이머가 탄생하고 게임전문 케이블 채널이 설립됐다.
한국은 온라인 게임의 메카가 됐고 2000년 50여개이던 온라인 게임 서비스 기업은 불과 2년 만에 500개사로 늘어났다. 수출도 활성화되며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가 미주와 유럽을 비롯한 20여개 국가로 진출했고, 넥슨의 ‘비엔비’는 중국에서 최고동시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하며 서비스 시작 3년 만에 전 세계 이용자가 1억6000만명으로 늘어났다. 웹젠의 ‘뮤’도 대만, 일본, 태국, 필리핀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게임 한류를 일으켰고 2000년대 중반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은 36%까지 치솟으며 전성기를 누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이 문을 연 세계 게임시장은 2010년 300억달러의 초대형 시장으로 성장했다.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 등으로 대표되는 콘솔게임 시장이 여전히 가장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지만 콘솔게임 역시 온라인화되고 있고, 온라인 게임은 모바일 게임과 함께 게임 분야 중 가장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1분기 네오위즈는 중국 시장에서 1인칭 슈팅게임 ‘크로스파이어’가 돌풍을 일으키는 등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에 힘입어 올해 1분기 역대 최대인 14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넥슨도 지난해 해외 시장 확대를 바탕으로 매출 9343억원, 영업이익 4072억원을 기록하며 고속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모바일 게임 업체들도 속속 각종 히트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부 기업의 선전이 돋보기이기는 하지만 미래 게임 산업의 성장동력이 될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한국 제조업체들의 점유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DFC 등 시장분석기관에 따르면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권 시장은 2010년 41.7%에서 2015년에는 46.1%로 성장하는 반면에 유럽과 북미권의 비중은 줄어들 전망이다.
18일 코트라에 따르면 중국의 게임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43% 성장했고 계속 고속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몇 상위 게임을 제외하면 중국 업체들의 게임이 대부분이고 중국 대형 게임사들의 독점화 추세도 점차 심해지고 있다.
블리자드 등 대규모 자본을 가진 북미 게임사들도 위협적이다. 블리자드는 중국과 북미, 유럽 등에서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2’로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곧 대형 신작 게임 ‘디아블로3’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반면, 엔씨소프트는 한때 세계 최대의 사용자를 거느렸던 ‘리니지’가 사양길에 접어들고 새 게임 ‘아이온’도 정체된 모습을 보이면서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하락했다.
엔씨소프트는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내 시장은 ‘게임 셧다운제’ 시행 등으로 미래 성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 게임 업계의 선전에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행성 산업으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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