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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은장도. |
인사를 나누자마자 이씨는 바로 다섯 평 크기의 아담한 작업실로 안내했다. 네 개의 작업대 위에는 이씨의 30년 손때가 묻은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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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세공 완성 작품인 은비녀. |
이씨는 1948년 해방 후 10대의 어린 나이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무로에 있던 은방공장인 ‘동광양행’에 취직해 은세공 일을 배웠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은세공 일을 배우면서 스스로 귀금속을 디자인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차 전통 세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은세공 기술로 이름 높았던 김진용, 이남재 옹을 스승으로 모시고 금·은의 채광과 분석에서부터 도금, 세공에 이르는 과정을 철저하게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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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장인이 작업실에서 은세공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
6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귀금속 세공시술인의 모임인 ‘남우회’를 만들었다. “회원수가 50명 정도였는데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회원 모두 찬란했던 세공기술의 맥을 잇고 활성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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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공장 ‘명천’ 이정훈 장인이 녹번동 작업실에서 완성된 은세공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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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방식으로 완성한 은가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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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장인이 송탄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으로 은을 녹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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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장인이 작업실에서 은제품에 전통문양을 정밀하게 조각하고 있다. |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에 관심을 안 가져요. 내년부터는 전통세공에 재능과 열의가 보이는 젊은이를 양성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세공 기술을 누군가는 이어가게 하고 싶습니다.”
사진·글=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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