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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사람들] 〈28〉서울시 무형문화재 은공장 ‘명천’ 이정훈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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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7-13 00:13:45 수정 : 2011-07-13 00: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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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오롯이… 은세공 전통계승 ‘외길인생’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이 돋보이는 은장도.
장맛비가 시끄럽게 쏟아지던 7월 초 어느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주택가에 자리한 ‘태광공방’에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은공장 ‘명천’ 이정훈(77) 장인을 만났다. 유달리 긴 흰 눈썹과 강렬한 눈빛에서 전통을 계승하는 장인의 고집이 드러나 보였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이씨는 바로 다섯 평 크기의 아담한 작업실로 안내했다. 네 개의 작업대 위에는 이씨의 30년 손때가 묻은 공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은세공 완성 작품인 은비녀.
“일제시대에는 조선인이 금·은을 만지는 것 자체를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기술과 문화를 말살하고 그 맥을 끊어 놓으려 한 것입니다.”

이씨는 1948년 해방 후 10대의 어린 나이에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충무로에 있던 은방공장인 ‘동광양행’에 취직해 은세공 일을 배웠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은세공 일을 배우면서 스스로 귀금속을 디자인하는 재능을 발휘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차 전통 세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당시 은세공 기술로 이름 높았던 김진용, 이남재 옹을 스승으로 모시고 금·은의 채광과 분석에서부터 도금, 세공에 이르는 과정을 철저하게 익혔다.

이정훈 장인이 작업실에서 은세공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52년 한국전쟁 피난 시절 대전에서 ‘미술당’이라는 금·은상점을 직접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전통세공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다.

61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귀금속 세공시술인의 모임인 ‘남우회’를 만들었다. “회원수가 50명 정도였는데 열의가 대단했습니다. 회원 모두 찬란했던 세공기술의 맥을 잇고 활성화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은공장 ‘명천’ 이정훈 장인이 녹번동 작업실에서 완성된 은세공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68년 김포공항 미군부대 내 하비 숍(Hobby Shop)에서 국내 첫 귀금속공예 전시회를 열었다. 봉황, 물고기 등 한국 고유의 전통문양에 진주, 수정을 장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아름다운 전통문양의 귀금속을 정교한 세공기법으로 완성시킨 작품들은 외국인들에게 격찬을 받았다. 그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의 ‘드비어스사’가 주관한 ‘국제 다이아몬드 창작대회’에 출품을 했다. 비록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보석 디자인과 세공에 눈을 뜬 계기가 됐다.

전통방식으로 완성한 은가락지.
세공작업은 100여개의 정과 망치를 사용하는 수작업이다. 특히 은제품에 금을 얇게 늘여서 모양을 만들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붙임기술인 ‘금부기법’과 정으로 세세히 때려서 문양을 내는 ‘쪼이조각’은 이씨의 독보적인 장기이다. 

이정훈 장인이 송탄을 사용하는 전통방식으로 은을 녹이고 있다.
“전통을 지켜야겠다고 고집을 부려 옛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데 만족해서는 발전이 없습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기법과 아름다움에 기초를 두고 현대에도 어울리는 친근한 작품을 만드는 일에도 공을 들여야 합니다.” 

이정훈 장인이 작업실에서 은제품에 전통문양을 정밀하게 조각하고 있다.
지난 5월 폴란드에서 서울시와 외국 주재 한국문화원 주관으로 서울시 무형문화재 전수자 25명이 참가하는 전시회를 성황리에 마친 이씨는 요즘 내년에 있을 중국 상하이 전시를 계획하며 작품 구상과 작업에 땀을 쏟고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통에 관심을 안 가져요. 내년부터는 전통세공에 재능과 열의가 보이는 젊은이를 양성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전통세공 기술을 누군가는 이어가게 하고 싶습니다.”

사진·글=이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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