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서울 한신초등학교 3학년 1반 3교시 국어시간. 학생들은 각자 책상에 한글과 한자가 섞인 국한혼용 국어교과서를 펴놓고 있었다. ‘3학년 학생인데 읽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으나 기우였다. 담임 교사가 “오늘 학습할 내용이 무엇인지 함께 읽어볼까요”라고 하자 학생들은 막힘없이 술술 읽어갔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신초등학교는 학생들의 국어실력 향상에 한자 공부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20여년째 한자 교육을 강화했다. 이 학교 학생들은 3학년 때부터 국한혼용 교과서로 국어과목을 배운다. 교과서는 교사들이 방학 중에 만들었다. 한글 전용 교과서는 학생이 국한혼용 교과서를 보다 막힐 때 참고하는 정도로 활용한다.
한자·한문 시간이 정규 교과과정에 없어 학생들이 어려워할 것 같지만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기초한자를 차근차근 배워 수업을 잘 따라간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자습시간과 쉬는 시간 등을 활용해 한자를 익힌다. 학교 측이 자체 제작한 ‘한자한자 한신한자’ 공책에 하루 딱 한 자씩 열 번씩 써야 한다. 10분 만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라 학습 부담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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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초등학교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학교 측이 자체 제작한 ‘한자한자 한신한자’ 공책에 하루에 한 자씩 쓰면서 한자를 익힌다. |
이 학교 황병무 교장은 “하루에 한 자씩 꾸준히 공부하면 6년간 엄청난 양이 쌓인다”며 “학교와 교사가 관심을 갖고 꾸준히 지도하면 학생들이 부담없이 한자를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한자를 익히면서 어휘력과 추리력이 크게 높아졌다. 학생들은 ‘극피(棘皮)동물’과 같은 어려운 한자어를 보고서도 금세 ‘불가사리’를 떠올린다. ‘가시 극’과 ‘가죽 피’라는 한자를 아는 덕분에 바로 불가사리를 연상할 수 있는 것.
“한자 공부는 수학 같은 과목의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가령 ‘함수(函數)’는 수학을 배웠을지라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학생이 많은데, 물건 등을 넣는 ‘함’(函)과 ‘수’(數)를 결합해서 가르치면 쉽게 ‘숫자가 상자(식)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값’으로 이해한다는 것. 무턱대고 ‘함수’의 의미를 외우려 할 때보다 학습효과가 크다. 황 교장은 “한자를 모르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겠지만 학문적 어휘는 80% 이상이 한자어라서 알아두면 학습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학생이 자발적으로 한자학습에 나서도록 한자·한문 대회를 여는 학교도 있다. 한문이 수학능력시험에서 선택과목이다 보니 고등학교에서 열심히 한문을 배우려는 학생이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몇몇 학교는 전 교과 성적을 높이는 데 필요한 과목이라고 판단해 학생의 한자·한문 공부를 유도하고 있다.


한일고 김종모 교장은 “한자 교육은 기본적으로 국어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한자를 공부하다 보면 사고 자체가 논리적·분석적으로 바뀐다”며 “다른 과목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도 스스로 한자·한문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채연 기자 w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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