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이란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 바로크 미술이 부상하기 전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 확산 되었던 미술의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미켈란젤로 이후의 화가들이 르네상스 양식의 겉만 모방한 결과, 르네상스의 균형과 이상미가 사라지고 왜곡과 과장이 형식화되었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하던 일을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하며 주어진 일만 마지못해 처리할 때,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이는 얼핏 보면 안정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상황이기도 하다. 천안함 사태가 났을 때 대통령께서는 “분단된 지 60년이 되다 보니 군도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다”고 말씀 하셨다. 이렇게 매너리즘에 빠진 군은 적을 불러들이고, 매너리즘에 빠진 예술가는 한 물 갔다는 평가를 받으며, 매너리즘에 빠진 직원은 조직의 경쟁력을 떨어트린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외부의 자극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60년 동안 적의 직접적인 침입이 없었는데 오늘이라고 특별히 긴장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외부의 자극 없이 스스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기성 가수들이 하나 같이 이번 기회를 통해 ‘타성’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경쟁의 틀 속에 들어와 새로운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위험과 자극이 목전에 느껴져서야 변화하는 사람은 일류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있고 위기는 도처에 깔려 있다.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만이 아닌 스스로 예지하는 자극에 의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또 다른 원인은 목표를 잃었을 때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성공 직후에 매너리즘에 빠지며 다시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최근 노키아의 경우도 마찬 가지다. 스마트폰이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결정이 세계 표준이 될 것이란 자만심으로 일관하는 사이 끝이 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 후 구심점과 응집력을 잃게 되는 정당, 업계의 선두에 도달해서는 방심하는 기업, 유명해진 후에는 예전의 히트곡과 창법에 안주하는 가수 등 모두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외국의 명문대학에 입학한 한국 학생들의 낙제율이 제일 높은 것도 입학 후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스님이 되어 처음 배우는 경전인 ‘초발심자경문’에는 ‘처음 먹은 마음이 곧 깨닫는 마음이다(初發心變正覺)’라는 글귀가 제일 먼저 나온다. 초심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표를 구할 때의 마음으로, 과장이나 부장이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보여 주었던 신입사원의 열의로 돌아간다면 이것이 이상적인 자세라는 말이다.
다음은 자극을 주는 환경에 노출 시켜야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위기감을 스스로 조성하는 것이다. 조직의 차원에서는 현재의 목표와 성과간의 격차를 강조한다든가 고객 불만, 경쟁상황 등을 조직원들에게 계속하여 주지시키는 것 등이 한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공한 사람, 자기계발에 열심인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자극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부하려는 학생이 몸을 일단 도서관으로 옮겨 놓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매너리즘에 빠져 드는 것은 마치 우리 몸의 간이 손상되어 가는 것과 같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기까지는 그 위험을 감지하기 어렵다. 빨리 빠져 나오는 것만이 사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학재 mindset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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