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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에세이] 남한산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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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27 09:15:47 수정 : 2011-06-27 09: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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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한산성 남문(지화문)
이른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올랐다.

2. 남한산성 수어장대-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으로 남한산성의 5개의 장대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오늘도 어제의 그 모습 그대로 남한산성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영욕이 교차했던 남한산성을 떠올리니 만감이 교차한다.

3. 험한 산세를 잘 활용한 성벽모습
인적이 드문 길을 천천히 걸어 정상에 오르니 희미한 안개로 가려진 서울의 모습이 저 멀리 북한산까지 보여 과연 이곳이 서울을 지키는 중요한 산성이라는 생각이 와 닿는다. 천지가 개벽한 현재의 서울을 병자호란을 겪은 이곳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4. 남한산성에서 내려다본 서울전경 멀리 북한산인수봉이 보인다.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 산성으로 신라 문무왕 때 지은 옛터에 쌓은 성으로 1624년 인조2년에 축성하여 1626년에 공사를 마쳤다.

5. 암문(暗門) - 인조 15년 1637년 한밤중에 습격해온 청병을 크게 물리친 곳으로 이 암문 부근을 ‘서암문 파적지’라 부른다.
남한지(南漢志)에는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고 되어있다.

6. 매바위-남한산성 동남쪽 축조를 맡았던 이회가 공사기일을 완공하지 못해 음해를 받고 참수형을 당하게 되자 그가 절명하는 순간 매 한마리가 날아와 이 바위에 앉아 슬피 울다가 없어져 매바위라 한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으나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현재의 송파구 삼전동부근)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7. 병암남성신수비(屛岩南城新修碑) -선조들의 건축실명제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이다. 정조3년 1779년까지 약 50여 일간에 걸쳐 수어사 서명응의 지휘아래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8. 남한산성 서문(우익문)

9. 남한산성 북문 (전승문) 병자호란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이곳의 전투를 ‘법화골 전투’라 한다.
10. 남한산성 비석군 - 성내의 비석 30기를 한곳으로 모아 놓은 곳으로 영의정을 지낸 심상규등의 비석들이 있다.


윤석하 (사진작가) 2908y@naver.com
사진 원본은 http://www.beautia.co.kr/ (昔河사진문화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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