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연이은 수상으로 돌풍을 일으킨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과 파격적인 소재에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주목을 받았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이 의기투합, ‘사랑’을 주제로 한 새 영화 ‘애정만세’를 내놓았다. 신작에는 두 감독이 독특한 색채와 스타일로 빚어낸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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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호수의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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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 |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대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양익준 감독의 ‘미성년’에서는 10대 민정이 30대인 진철에게 “나이만 먹으면 뭐 해, 하는 짓은 완전 10댄데”라고 놀리는가 하면 ‘고삐리’ 민정과의 데이트가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진철이 선글라스를 쓰고 나오자 “지가 연예인이야 뭐야?”라며 진철을 당황케 하는 말을 쉴 새 없이 내뱉어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애정만세’는 등장인물들이 솔직하고 당당하게 사랑을 찾거나 사랑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것이 나이·성별·세대를 불문하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감성’이란 사실을 새롭게 확인시켜 준다.
주연진의 연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기교와 꾸밈 없이 그들의 연기만으로도 스크린이 빛났기 때문이다.
2011년 제47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2010년 제3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등을 수상한 배우 서주희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통해 입증한 1인극의 대가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실제 나이에 걸맞은 중년 여성을 실감나게 표출해냈다. 화장기 없는 민낯에 대충 묶은 머리, 후줄근한 옷차림, 특히 자다 깬 표정 연기는 우리가 흔히 보아온 동네 아주머니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다.
허준석과 류혜영은 행동과 말투 모두 실제 그들의 모습이라 착각하게 할 만큼 생생한 연기를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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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정호수의 맛’ |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순임은 지난가을 산정호수에서 열렸던 회사 야유회를 잊지 못한다. 자신을 감싸안다시피 하며 이인삼각 경기를 펼치던 준영의 따뜻한 손길을 아직도 느끼기 때문이다. 순임은 오로지 준영과의 추억을 더듬기 위해 딸의 분홍색 어그부츠를 신고 홀로 산정호수를 찾는다. 그날 행사가 치러졌던 그때 그 자리에서 그날의 기억과 흥분을 되새긴다.
순임은 준영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2인3각 경기장에 서 있다”며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음성 안내가 흘러나오면서 혼자 전화놀이 한 것이라는 게 밝혀진다. 갈대밭에 와서는 당시 발목에 난 생채기를 재현해 보려는 듯 갈대와 잔가지들을 꺾어 감아보려지만 뜻대로 잘 되지는 않는다.
한창 꿀맛 같은 추억을 즐기고 있을 때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어그부츠를 신고 나가야 하니 빨리 돌아오라는 내용이다. 흥이 무참하게 깨진 이때 발을 헛디뎌 순임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기력이 떨어진 듯 누운 채 둘러본 숲 속의 정경. 자신을 감싸주는 듯한 분위기를 타면서 홀로 마스터베이션을 하며 숨겨왔던 욕망을 분출한다.
야유회날, 2인3각 경기의 도착점에 이르자마자 준영은 재빨리 두 사람의 발목을 묶고 있던 끈을 풀고는 돌아서 가버린다. 이를 본 순임의 허탈해진 표정과 자위의 끝에 밀려오는 허탈한 표정이 오버랩된다. 자연의 정경만이 그녀를 달래줄 뿐.
야근을 위해 회사에 돌아온 순임은 복도에서 준영을 만난다.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준비한 초콜릿바를 건네주려다 다른 여자랑 들떠서 통화하는 그를 보고는 꺼낸 초콜릿바를 그의 입에 가져가는 듯싶더니 이내 자신이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뒤돌아 걷는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마치 그래도 다시 새로운 사랑을 할 것이라는 각오의 눈빛을 반짝이면서.
철저하게 순임을 관찰하는 카메라 시선과 마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산정호수의 맛’은 부지영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여성 심리 묘사로 순임의 사랑 고민에 관객 모두를 동참케 한다. 일반 상업영화에선 상상할 수 없는 독특한 발상과 연출법으로 관객 누구나 사랑에 빠져들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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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 |
깨질 듯한 두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진철은 옆에 모르는 여자 민정이 누워 자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다음날 녹음실로 찾아온 그녀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찾아온 민정. 하지만 진철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뭔가 찔리는 마음에 고등학생 신분인 그녀를 계속 피해보려 하지만 본의 아니게 밥이면 밥, 술이면 술, 사진전 관람과 놀이공원 기구타기 등 당돌한 그녀에게 끌려다니게 된다.
놀이공원에서 ‘자이로드롭’이나 ‘바이킹’을 타는 동안 둘의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두 손은 안전바를 꼭 쥔 채 눈조차 뜨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진철과는 달리 민정은 양 팔을 흔들어대며 신이 난 듯 목청껏 소리지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해 보는 대목이다. 할 얘기가 있다는 진철의 말에 민정은 맥주를 사올 테니 다녀와서 얘기하자고 한다. 평소와 다르게 진철은 “지금 이야기하고 싶다”며 자신의 뜻을 한 번 더 밝힌다. 순간 민정이 진철의 눈을 직시하며 묻는다. 객석이 숨을 죽이고 몰입할 만큼 극중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나랑 같이 있는게 창피하게 느껴지거나 뭐 이런 거야?”
“그런 건 아니고….”
“됐어. 그럼 맥주 사오고 나서 얘기 해.”
민정의 시원스러운 성격이 위기의 순간을 잘라버린다. 서로 이별을 두려워하는 속마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영화는 긴장과 해소의 조였다 풀기를 거듭하다가 민정의 엄마가 등장하는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흘러간다.
꾸밈없고 거칠지만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양익준 감독 영화의 장점이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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