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타델은 도시와 영욕을 같이 해왔다. 사실 시타델과 도시(city)의 어원은 동일하다. 이탈리아어로 도시가 치타(citta)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시타델의 성격이 더욱 뚜렷해진다. 요즘은 해적 공격 등에 대비해 선박 내에 설치한 긴급 대피소도 시타델이라고 부른다. 선박은 국제법상 영토로 간주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듯한 의미 확장이라고 하겠다.
이런 의미의 시타델이 소설이나 게임 등의 소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헤지펀드 명칭으로도 적격이다. 시타델인베스트그룹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엄청난 손해를 보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1990년 출범 이후 94년을 제외하고 줄곧 플러스 수익을 내는 등 이름에 걸맞은 성적을 거둬온 시타델펀드가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에 함락당한 셈이다. 보드게임의 일종인 ‘시타델’은 게임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좋다. 플레이어가 중세유럽의 영주가 되어 도시의 번영을 경쟁하는 게임이다. 소설로는 가상의 산 시타델 등반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시타델의 소년’이 있다.
소말리아 해적의 공격을 받은 한진텐진호의 선원들을 구조하는 데 시타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선박 내의 시타델은 두꺼운 철판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부수고 들어갈 수 없고 비상식량과 통신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정부가 위험해역을 지나는 선박에 한해서 시타델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 대책을 강화한 것이 나름대로 효과를 거뒀다. 매뉴얼을 갖추고 실제 상황이 터졌을 때 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유비무환이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를 만들어놨어도 대비를 소홀히 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역사적으로 봐도 시타델이 외부 공격에 의해 함락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내부분열이나 방심 등이 시타델 함락의 주 요인이라는 것이다. 선박에 시타델을 설치했다고 해서 혹은 이번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서 방심하지 말라는 얘기다.
전천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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