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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응백의 테마낚시] <13> 잿방어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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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4-21 21:13:41 수정 : 2011-04-21 21: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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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성에 가까운 어종으로 가을이 제철이지만
이른 봄철에도 여전히 맛있다
큰 것은 1.5m까지 자라며 50㎏짜리도 있다
어린 날의 소풍이 그랬다. 손꼽아 소풍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소풍 때 싸가지고 가는 것이라야 삶은 밤, 삶은 달걀, 사이다, 김밥 정도가 전부였지만, 소풍날 하는 것이라야 수건 돌리기, 장기자랑, 보물찾기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 설렜던 기억은 아직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소풍도 식상해져서 별반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이후 소풍은 그냥 공부 하루 안 해도 좋은 날 정도의 가벼운 연례행사에 불과하게 되어버렸다. 어른이 된 다음 그렇게 마음 설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낚시를 다니면서부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밤잠을 설치도록 만드는 출조가 있다. 대개 가보지 않은 바다나 강, 새로 도전하는 어종에 직면할 때의 출조가 그렇다. 고기마다 생태가 다르고 같은 어종이라 해도 사는 곳에 따라 잡는 방법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난 3월 월간 낚시 책을 뒤적거리다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기사를 발견했다. 서귀포 일대의 제주 남쪽 바다에서 다금바리 낚시가 된다는 것이다.

제주 남쪽바다에서 바라다 본 섶섬 뒤로 멀리 한라산 정상이 보인다. 이날 제주바다는 초칠을 해서 반들거리는 장판처럼 잔잔했다.
다금바리! 그것이야말로 꿈의 고기가 아닌가? 지난해 가을 서해에서 참돔 여럿을 잡으면서 다음에는 제주도 다금바리를 꼭 타이라바로 잡아보겠다던 꿈을 꾸지 않았던가. 다금바리는 제주도 특산이어서 육지에서는 구경도 못할뿐더러 제주도에서도 ㎏당 20만원이 넘는 최고급 횟감이 아닌가. 딱 한 번 10여년 전에 제주도에 놀러갔다가 제주도가 고향인 유명 작가의 배려로 다금바리회를 먹어 본 적이 있다. 워낙 여러 명이 함께 한 마리를 나눠 먹어서 그 회맛이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 유명한 푸아그라와 송로버섯도 유명 호텔에서 딱 한 번 먹어보긴 했지만 워낙 양을 적게 주어서 그 맛도 기억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모름지기 기억에 남으려면 좀 많이 그리고 자주 먹어야 하는 법.

다금바리가 워낙 귀하다 보니까 능성어를 다금바리라고 속여 파는 경우도 많은 모양이다. 수입 능성어를 다금바리라고 생각하고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이야기다. 먹는 사람이 다금바리라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 역시 뭐 크게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이다. 능성어는 제주에서는 구문쟁이라 하는데, 사실 전문가가 아니면 구문쟁이와 다금바리를 구분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요즘은 대만 같은 곳에서 능성어를 수입하기 때문에 시내 횟집 물칸에서도 종종 능성어를 볼 수 있기도 하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도 1㎏에 8만원 정도에 팔기도 한다.

여하간에 그 잡지에서는 다금바리와 붉바리 같은 최고급 어종을 타이라바로 잡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기에 그 선장 연락처를 메모해 두고는 같이 출조할 꾼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나의 ‘다금바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고등학교 동기인 유강근 변호사와 오라클의 백성목 상무 그리고 백상무의 지인인 최철식 상무, 이렇게 세 사람이 우선 나의 ‘말로만’ 다금바리 미끼에 유쾌하게 홀딱 넘어갔다. 그리고 그 주 내내 다금바리를 품에 안고서 새로 타이라바를 구입하고 혹 대형 다금바리가 물리면 줄이 터질까봐 새로 합사줄을 바꾸고, 큰 맘 먹고 아부가르시아 릴도 장만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나 외의 다른 꾼들도 그랬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새로 허릿심이 강한 루어대를 준비하여 출정을 준비했고 우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토요일 새벽 첫 비행기에 올랐다. 

잿방어와 붉은 쏨뱅이 회로 포식하는 일행들.
일행은 제주 공항에 도착하여 미풍식당으로 가서 해장국을 한 그릇씩 비우고 서귀포시 바로 옆에 있는 위미항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최 상무는 우스갯소리로 일행을 즐겁게 한다. 나도 그렇지만 일행 모두 한국 최남단에서의 낚시에 잔뜩 고무되어 있는 것이다. 오전 9시 조금 전 위미항에 도착하니 사람 좋게 생긴 재니스호 고창익 선장이 대기하고 있었고 우리는 바로 배에 올랐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바다는 초칠을 해서 반들거리는 장판 같다. 낚시를 하다 보면 일 년에 이런 잔잔한 바다를 만나는 날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래, 오늘은 다금바리를 잡는 거야. 한 15분 이동했을까. 일행은 선장의 신호에 맞추어 채비를 내리고 릴링을 시작한다. 수심은 40m가량. 채비가 바닥을 찍으면 15m쯤 올리고 다시 내리고를 반복한다. 유 변호사가 작은 붉은쏨뱅이 한 마리를 올린다. 붉은쏨뱅이가 올라오면 다른 것도 입질할 징조다.

고 선장은 일행의 낚시 실력을 가늠했는지 낚싯대를 잡고 같이 합세한다. 고 선장의 낚싯대에 제법 씨알 좋은 붉은쏨뱅이가 달려 올라온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시간이 가도 입질이 아주 간간이 드물게 온다.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꼬드김에 제주까지 출조했는데, 다들 손맛을 보아야 내가 사기꾼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무심하다. 오히려 정오가 되어가니 입질이 더 없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채비 색깔을 바꾸고 무게를 달리해 보아도 도통 입질이 없다. 한라산과 서귀포 앞다바의 섶섬, 문섬, 범섬이 나란히 보인다. 마라도처럼 납작하게 생긴 지귀도도 보인다. 낚시가 잘 되어도 풍경이 들어오지 않고 반대로 안 돼도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 욕심 때문이다. 이 경치 좋은 곳에 와서 낚시가 안 되어 노심초사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추하게 느껴진다.

고 선장은 입질이 없으니 농어나 잡아보자고 하며 포인트를 옮기고 난 뒤 지깅낚시로 전환한다. 지깅 장비가 없으니 일행은 타이라바 낚시를 고수한다. 유 변호사가 그래도 루어낚시의 대가답게 붉은 쏨뱅이 몇 수 올린다. 이윽고 백 이사의 낚싯대에도 붉은쏨뱅이가 달린다. 나와 최 상무만 꽝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고 선장은 요즘 제주 농어 회맛이 좋다며 한 마리라도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도 허사다. 점심 때가 되어 고 선장이 김밥과 물칸에 있는 잿방어 한 마리를 내놓는다. 그러면서 ‘잿방어 회맛 한 번 보면 방어나 부시리 같은 것은 못 먹을 거’라고 한다. 붉은쏨뱅이와 잿방어로 회가 한 상 차려졌다. 각 1병씩만 하자고 소주 4병을 내 놓았다. 

잿방어 한 마리로 9회 말 역전홈런을 날린 최 상무.
야, 그런데 이게 무슨 맛이냐. 잿방어 회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고소하면서도 쫀득하고 수박 향 같은 것이 잇새로 스며드는 맛. 원래는 가을이 제철이지만, 이른 봄철에도 여전히 맛있다. 잿방어는 방어나 부시리와 같은 종류인데 몸에 잿빛이 강하고 좀더 열대성에 가까운 어종으로 1.5m까지 자라며 큰 것은 50㎏짜리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는 서귀포 일대에서만 잡힌다고 한다. 일행은 제법 큰 잿방어 한 마리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소주가 들어가니 그제야 기분들이 풀어지며 낚시의 노역에서 벗어나 여유를 부린다. 그리고 마지막 일전(一戰). 그만그만한 쏨뱅이를 몇 마리 잡고 난 뒤 최 상무가 드디어 일을 벌인다. 잿방어 한 마리를 기어코 낚아 올린 것이다. 9회 말 역전 홈런이라고나 할까.

그러고는 끝이다. 고 선장은 다이빙하는 사람들에게서 핸드볼공만 한 홍해삼 한 마리를 얻더니 자신의 식당에서 제대로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한다. 고 선장의 부인이 올해 처음 채취했다는 고사리와 두릅에다, 쏨뱅이 매운탕에 홍해삼까지 잔뜩 차려 놓았다. 벚꽃 몽우리 밑에서 한라산 소주가 술술 들어간다. 그리고는 대취.

다금바리는 구경도 못했지만 잿방어와 제주의 풍광과 인심으로 일행은 찬란한 하루를 보냈다. 다금바리를 목표로 일행은 또 한 번 뭉칠 것이다.

문학평론가 hbook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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