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 정적 깨고 수행 일깨우는 ‘죽비의 호통’… 대나무 쪼개고 다듬는 ‘장인의 삶’ 고요한 산사에 흐르던 정적을 깨트리며 한순간 죽비가 호통친다. 고요함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흐트러지던 정신이 한곳으로 모아진다. 장군죽비의 위엄이다.
죽비는 불교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대나무로 만든 법구다. 죽비자라고도 하는 죽비는 주로 대나무로 만드는데 가운데를 타서 두 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3분의 1은 자루로 만든 형태가 보통이다. 손잡이를 오른손에 쥐고 갈라진 부분을 왼손 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 대중의 수도를 지도한다. 죽비는 참선 이외에도 예불과 입정(좌선), 참회, 공양, 청법(설법을 듣는 것)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도구로 사찰이나 선원, 강원 등에서 꼭 필요한 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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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장인 류시상씨가 경북 상주 자신의 작 ◇류씨가 작업실에서 죽비를 만들고 있다. 업실에서 죽비를 만들고 있다. 죽비 재료인 대 갈라진 끝부분에는 톱밥을 채운다. 나무는 산청에서 류씨가 직접 키운 것들이다. |
죽비를 평생 업으로 삼고 대나무를 쪼개고 다듬는 삶이 있다. 죽비장인 류시상(52)씨 얘기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가 내리던 4월의 어느 날 경북 상주를 찾았다. “90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모든 걸 포기하고 몸을 맡겼던 경주 골굴사에서 죽비와의 인연이 시작됐지요.” 약사여래 기도를 올리다 스님들이 짚불을 때놓고 대나무 막대기를 넣었다 뺐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스님들이 죽비를 만드는 중이었다. 그때만 해도 죽비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없었고 스님들이 직접 만들어 사용하다보니 모양만 죽비였다. 류씨를 받아줬던 골굴사의 적운 스님이 “자네가 솜씨가 좋으니 한번 만들어보게”라며 운을 뗀 지 벌써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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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가 작업실에서 죽비에 용머리를 조각하고 있다. |
죽비를 마음에 품고 1년간 머물던 골굴사를 떠나 고향인 상주로 돌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류씨의 죽비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의 선가죽비로 탄생했다. 류씨는 한가지 생각으로 죽비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쳐도 터지지 않는 죽비. 그의 죽비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먼저 좋은 대나무를 채취한 뒤 건조, 손잡이 부분 파기, 불로 굽기, 깎기, 톱밥 메우기, 교정세목 만들기, 옻칠, 기름칠, 실 감기의 순서다. 그는 “12월에 대나무를 구해놓는데 올해는 300개 정도를 마련했다”며 “터지지 않는 좋은 죽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대나무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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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가 죽비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들. |
그가 만든 선가죽비는 터지지 않도록 소리 나는 끝부분이 넓적하게 퍼져 있고 그 속은 톱밥으로 메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죽비가 붙어 소리가 잘 나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교정세목(류씨가 직접 이름을 붙였다)이라는 죽비의 갈라진 틈에 끼우는 젓가락 같은 나무도 만들었다. 손잡이 부분에는 교정세목을 끼워둘 수 있는 보관용 구멍을 따로 만들었다. 법회 때 사용하는 죽비에서 장군죽비, 용이나 독수리, 호랑이 등을 조각한 작품 죽비까지 그가 만드는 죽비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터지지 않는 죽비를 향한 20년 그의 인생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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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의 작업실에 쌓여 있는 대나무. 좋은 대나무를 구하는 것이 좋은 죽비의 필수 요건으로 꼽힌다. |
“지금도 더 좋은, 완벽한 죽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솜씨가 미숙할 때 만들었던 죽비를 사가셨던 스님들이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저한테 연락주시면 새로 만들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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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씨가 만든 장군죽비. 손잡이 부분 아래쪽에 선(禪)이라고 적혀 있다. |
채취, 건조, 옻칠, 기름칠 등의 여타 과정을 빼고도 깎고 다듬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류씨의 선가죽비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금껏 길이 없었고 아직도 길을 만들고 있다.
사진·글=허정호 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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