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은 '정의(正義)'라는 강의에서 다소 극단적이고 희극적인 상황을 가정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의 생명을 희생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수의 행복을 최선이라고 여기는 공리주의(功利主義)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선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직원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이들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데 대해서도 비슷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쿄전력 후쿠시마 발전소의 2호기 부근에서는 19일 이 회사와 하청업체 직원 279명이 전력 공급을 위한 케이블 설치 작업에 전념했다.
이들이 입은 방호복은 합성수지계 부직포로 만들었기 때문에 투과율이 높은 감마선을 막지 못한다.
원전 사고의 최전선에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작업원은 운영회사인 도쿄전력과 관계회사, 원자로 제조사인 도시바, 히타치제작소 등의 직원들이다.
피폭량이 80mSv(밀리시버트)를 넘는 순간 배지에서 경보가 울리고 송전 케이블 설치에 참가한 작업원들은 20명이 한 팀을 이뤄 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일부 직원들은 이미 상당량의 방사선에 노출됐다.
도쿄전력은 근로자 6명이 높은 방사능에 노출됐으나 현장에서 계속 복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의 한 직원은 수증기를 빼내는 작업을 하다 10분 만에 노출량이 106.3mSv까지 달하기도 했다. 단기적으로는 면역체계가 약화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잠복기를 거쳐 심각한 질환이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도쿄전력은 또 직원의 방사선 노출한도를 기존 연간 100mSv에서 연간 250mSv로 올렸다. 연간 약 0.3∼0.5Gy(그레이)를 전신에 균일하게 피폭하면 면역체계가 약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Gy를 Sv와 같은 단위를 쓰기 때문에 시간당 250mSv는 0.15Sv로 인체에 유해한 수준에 근접한다.
특히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2007년 권고안에서 일반적인 대응사태와 다른 '비상피폭상황'에 한해 인명구조가 필요한 때에는 '(인명구조에 따른) 다른 사람의 편익이 구조자 위험을 초과할 경우' 방사선 노출량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사회적 편익을 최대화하는 논리는 공리주의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도쿄전력의 한 직원 가족은 "사고 후 피폭 대책도 없었단 말이냐. 정부나 도쿄전력은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죽이려는 것이냐"라고 따져 물으며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참사를 경험한 러시아 유력 경제지인 베드모스티도 "일본인은 자신의 체면을 차리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치르려 한다"고 혹평했다. 또 다른 유력지 코메르산트는 "일본의 인터넷상에서는 사고 대책에 전력하는 도쿄전력의 직원이 '최후의 50인'으로 칭송되지만, 외국인은 '헛수고'라는 차가운 반응"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직원들의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이뤄지고 있다.
초기에는 직원 50명만 남아 일했으나 19일까지 자원자가 580명으로 늘어나면서 교대근무를 통해 1인당 방사선 노출량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게 됐다. 또 무인정찰기와 무인로봇을 동원한 점도 방사선 노출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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