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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오페라 대중화 나선 박경일 OTM컴퍼니 대표

입력 : 2011-02-08 21:03:46 수정 : 2011-02-08 21: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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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우리말로 부르니 배우·관객 모두 즐겨요”
“우리나라 오페라 역사는 60년이 넘었지만 뒤늦게 들어온 뮤지컬에 비해 아직도 졸리고 어렵다는 인식이 만연하죠. 제 작품을 보고 ‘이 정도면 오페라를 즐길 수 있겠다. 다른 오페라도 봐야지’라고 생각한다면 큰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박경일 OTM컴퍼니 대표는 “오페라 가수, 관객 모두 진정으로 오페라를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말 오페라를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말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가 공연되고 있는 서울 중구 세실극장. 지난달 말 이곳에서 만난 박경일(46) OTM컴퍼니 대표는 우리말 오페라는 “오페라 가수와 관객이 모두 작품을 이해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무대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12년 전부터 로시니 ‘세비야 이발사’, 도니체티 ‘사랑의 묘약’,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마술피리’ 등 해외 오페라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 700회 이상 공연하며 오페라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연출가다.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연극과 음악극에 더 관심이 많았다. 대학교 4학년 때 우리나라 창작음악극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경험이 있고, 성악을 전공한 그는 ‘음악극 장르에 인생을 걸자’고 생각했다. 더 좋은 음악극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오페라를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오페라 극장에 들어섰는데 무척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게 진짜 오페라구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오페라를 멀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려던 연기·노래·드라마·음악이 어우러진 음악극의 기본이 오페라였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죠.”

이후 그는 오페라에 심취했다. 오페라를 알고 싶어 이탈리아 원어 악보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영어 사전, 영한사전을 옆에 두고 생소한 이탈리아어와 싸움했다.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부분은 동네 이탈리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 물어봤다. 가장 먼저 손에 잡은 베르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시작으로 유학기간 동안 60편의 작품을 번역했다.

1998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극단 ‘신(新)’을 만들었다. 한국어 오페라를 연구하는 일종의 스터디 모임 성격의 극단이었다. 그러다 2000년 소극장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세빌리아 이발사’를 무대에 올렸다. 2004년 극단 이름을 지금의 ‘OTM컴퍼니’로 바꿨다.

왜 우리말 오페라를 시도했는지 묻자 박 대표는 “처음에는 배우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을 꺼냈다. 오랫동안 오페라 가수들이 이탈리아 가사로 된 아리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렀기 때문에 관객들도 오페라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초창기 이탈리아어 사전도 제대로 없던 시절, 성악가들은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또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서적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해 아리아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여러 단계의 번역을 거치며 원곡은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결국 성악가들은 기계적으로 가사를 외우고, 해외 성악가들의 노래와 연기를 모방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성악가들이 자신의 역할과 부르는 노래 내용이 무엇인지 100% 이해해야 관객들에게 오페라가 줄 수 있는 에너지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고, 관객은 오페라를 이루는 드라마와 멜로디 중 드라마는 빼고 오로지 성악가의 소리를 감상하는 것에 머물게 된 것이죠. 우리말 오페라의 시작은 성악가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관객들이 오페라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말 오페라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어는 모음이 5개로 단순하고, 발음에 받침이 없는 반면 우리말은 모음도 여러 개이고 받침도 있다. 그래서 노래에 어울리면서, 뜻도 명확하게 전달하고, 발음하기도 쉬운 자음·모음·받침을 찾아내야 했다. 한국 성악가들도 어려워 했다. 성악 발성 교육을 이탈리아어 모음으로 하고, 노래도 이탈리아어로 연습해왔기 때문에 우리말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발음도 정확하게 되지 않았다.

처음 우리말 오페라를 공연할 때는 생소하다는 이유로 정통 클래식계로부터 외면 받기도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우직하게 밀고 가다 보니 이제는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 네티즌은 박 대표가 연출한 우리말 오페라를 보고 “극장에서 최초로 본 오페라가 이 작품이어서 다행이다. 문화적인 생활을 즐기기 시작한다면 한 달에 한두 번은 오페라를 볼 듯하다”는 감상평을 쓰기도 했다.

“12년 전에는 새로운 시도였지만, 지금은 우리 것을 모방한 작품이 발표되는 것을 보면 ‘내가 틀린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원어 공연을 할 거예요. 성악가, 관객이 작품을 완전히 이해할 때 원어 오페라는 그 감동을 더 완숙하게 전달할 테니까요.”

우리말 오페라라는 새로운 시도를 한 그는 지난해 12월 ‘오페라 플래시몹’으로 또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12월 서울 영등포 쇼핑몰 타임스퀘어에서 진행된 ‘오페라 플래시몹’의 한 장면.
OTM컴퍼니 제공
서울 영등포 쇼핑몰 타임스퀘어에서 배우들은 쇼핑몰 내 청소부, 여직원 등으로 정체(?)를 감추고 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쇼핑몰 내에 울리던 음악이 그치고 한 여성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사이 한 남성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며 ‘세비야 이발사’ 중 피가로의 아리아 ‘난 이 거리의 해결사’를 불렀다. 이어 지나가던 청소 도우미, 안내데스크 여직원, 유모차를 끌고 가던 부부, 2·3층 난간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합창을 선보였다. 15분 정도 노래가 끝나자 배우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보통 ‘오페라 보러가자’고 하면 반응이 미지근하다. 오페라는 어렵고, 일부 특수층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가 ‘오페라 재밌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어 이 같은 깜짝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면서 “생각보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2차, 3차를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줄줄이 숨가쁘게 쏟아낸다. 우선 공연 중인 ‘세빌리아 이발사’를 극장을 옮겨 오픈 런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레온카발로 오페라 ‘팔리아치’,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한국어 버전 공연도 준비 중이다. 300∼400석 규모의 오페라 전용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창작 오페라 ‘봄봄’, ‘선녀와 나무꾼’ 등도 기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세계적인 음악극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세계의 성악가들이 공연을 하기 위해 우리 말을 배워야 하는 수준 높은 음악극을 만들고 싶다”는 박 대표. “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때가 오지 않겠어요?” 환한 그의 웃음이 우리말 오페라의 밝은 미래를 말해주는 듯하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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