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배려하는 존칭 어법 맞게 써야

말은 사회변화를 반영하게 마련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이에서는 높임말이 사라지고 있다. 경직된 신분관계를 반영하는 높임말 체계는 될수록 간소화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계층 간의 차이와는 다른 연령 차이에서 오는 높임말도 있으니 일률적인 폐기가 좋은 것도 아니다. 존댓말이 사라지는 것이 평등주의 사상의 보급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교육이나 습관과 관련된 사례도 많다.
가끔 젊은이의 전화를 받는데 말에 대한 소양이 전혀 없는 경우가 있다. “아, 마침 집에 계시네요. 안 계시면 어떡하나 걱정했거든요.” 전통적인 관례를 따르면 “댁에 계시네요” 해야 옳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옛날 잔재라고 할지 모르지만 높임말은 반드시 신분관계에 대한 고려만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도 있다. ‘댁’이란 말이 불필요하다면 ‘계신다’는 말도 불필요한 셈이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아, 마침 집에 있네요”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니 높임말 사용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과도한 허례허식이다.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춘부장은 안녕하신가”라는 말을 흔히 들었다. 요즘 우리 같은 노년층도 ‘춘부장’이란 말은 쉽게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버님’이란 말이 쉽게 나오고 또 그리 쓰고 있다. 어쩌다 무심결에 ‘춘부장’이란 말이 튀어나오면 말하고 나서도 무언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고 상대방도 약간 의아해한다.
‘운전수’란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폐어가 되다시피 했다. ‘기사’란 존칭이 완전히 대체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요즘은 ‘사장’이란 말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웬만한 중년 이상의 남성 아무에게나 ‘사장님’이라고 한다. 옛날의 사농공상 개념이 완전히 뒤바뀐 세태를 반영해 매우 흥미롭다. 그러나 사장도 아닌데 종이비행기를 태우고 호칭하는 것이 반갑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머지않아 사장은 존칭이 아니라 놀림 말이 될 공산이 크다. 사회적 지위의 향상이 따르지 않는 한 ‘운전기사’란 말도 미구에 함의가 달라질 것이다.
‘사장’ 못지않게 많이 쓰이는 말에 ‘선생’이란 말이 있다. 교사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김구 선생’ ‘의사 선생’이라 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학교생활을 하기에 ‘선생님’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입에 밴 말이다. 그래서 쉽게 나오는 존칭이기도 하다. 우리가 편지 겉봉을 쓸 때 ‘아무개 선생’ 하면 충분히 존칭이 된다. 그러나 연소자가 맞대놓고 ‘김 선생’ 하고 부르는 순간 ‘선생’은 이미 존댓말이 아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처럼 ‘선생님’이라고 하는 예는 드물다. 학생이 교사를 대할 때 그냥 ‘김 선생’이라 부른다. 우리는 학생이나 연하자는 ‘선생님’이라고 해야 존칭이 된다. 미묘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어느 나라 말에나 있다.
높임말을 단순한 옛 봉건적 신분관계의 잔재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상대가 누구이든 상대방에 대한 경의나 배려의 산물이라고 보면 높임말이나 존칭은 살려 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왕 살려둘 바에는 선후 관계의 모순 없이 어법에 맞도록 쓰는 것이 좋다.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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