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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의 주옥 같은 단편소설, 연극으로 부활

입력 : 2011-01-13 18:24:06 수정 : 2011-01-13 18: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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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 연극 모음-체호프 단편을 무대에 올리다’ 번역 출간

◇모스크바 예술극장 단원들과 함께.
 ◆체호프 단편을 무대에 올리다-안톤 체호프 단편 연극 모음/L. M. 쉬흐마토프·V. K. 리보바 엮음/박정곤 옮김/인디북/1만2000원

  ▲세계 3대 단편 소설가, 체호프의 작품을 연극으로 감상하다

  ‘체호프 단편을 무대에 올리다’는 안톤 체호프를 일생의 벗이자 스승으로 삼고 싶어하는 박정곤 모스크바 고리키문학대학교 한러문화연구원 원장에 의해 모스크바의 한 서점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희곡도 아니다.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이제껏 체호프를 대표하는 어떤 작품보다 그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가치를 지녔다. 박 원장은 장막극과 단편으로 널리 알려지거나 정형화되어 있는 체호프의 이면을 탐색하고자 하던 터에 적절한 작품을 찾게 되었다. 체호프의 작가적 역량과 천재적 감각이 후세대들에 의해 더욱 빛을 발하여 그 가치가 더해진 작품이다. 그것도 100여 년 동안 다듬고 만들고 보이고 하였으니 그 쓸모와 깊이가 여간 아니다.

 그 100여 년의 작업은 러시아의 보리스 슈킨 연극대학교의 L. M. 쉬흐마토프와 V. K. 리보바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5세대에 걸쳐, 지금은 국가 전역에 잘 알려진 훌륭한 배우들이 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이 행한 수많은 공적 가운데 가장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 ‘안톤 체호프가 창작한 단편들의 상연화 작업’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체호프의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느끼고 보이고 감동을 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바흐탄고프 극장 전경.
  소설과 희곡 속 체호프가 만들어낸 인간 유형들과 그들의 이야기, 예측을 비웃는 전개와 반전이, 번뜩이는 그의 통찰력과 재치를 증명해준다. 그런데 그러한 그의 능력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극대화되어 나타남으로써 이것을 보고 듣는 이의 오감을 단번에 쾌감으로 끌고 간다.

 세상 살아가는 인간들의 다양한 면, 탐욕과 무식, 냉혹과 위선, 어리석음과 교활함 등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모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체호프는 선한 주인공을 이상화하거나 치장하지 않는다. 또한 악한 주인공이라고 해서 어둡고 부정적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그들이 누구이든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내면의 갈등과 현실적인 문제들, 그들은 그들이 누구이건 간에 자신 앞에 놓인 문제들을 즐기거나 불행해 하거나 혹은 극복해나간다. 거기에서 체호프만의 특색이 나타난다. 치졸한 방법이든 정의롭고 적절한 방법이든 혹은 너무나 세속적인 속임수든 나름의 방법을 써서라도 삶을 긍정하며 열심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독자를 위한 선물이 있다. 체면을 던져버리고 웃게 하는 유머 감각이다. 

◇‘벚나무 밭’의 한 장면(우 니키트스키흐 보로트 극장).
 23편의 연극 중 한 편만 보더라도 체호프의 작품을 어떤 식으로 발현해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발소에서’의 주인공 마카르는 무식한 데다 비호감인데도, 동정심을 유발할 정도로 보는 이를 슬프게 한다. 그는 이발소를 경영하는 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한껏 치장한다. 그리고 전부 합쳐도 땡전 한 푼의 가치도 없는 초라한 이발소에서 날이 무딘 가위로 손님의 머리를 잡아 뽑아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런 그를 그의 대부는 공짜로 이발을 받으면서 한 치의 배려도 하지 않고 절망 상태에 빠뜨리고 만다. 마카르와 결혼을 약속한 딸을 그보다 나은 조건을 가진 남자에게 결혼시키기로 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것이다. 배신감과 분노에 차오른 마카르에게 이발을 거부당한 그는 반만 자른 머리로 이발소를 나간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과 절망의 분위기가 어우러지고 감정이 고조되면서 독자는 통쾌함과 연민이 뒤범벅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렇게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인물들의 성격, 동정심과 동시에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들을 통해 마음대로 화내고 웃다가도 깊고 오래가는 여운을 독자는 느낄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고 헤쳐가야 할 무수한 인간의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안톤 체호프의 천재적인 감각과 인간의 내면을 파헤치고 그것을 황당하거나 재미있는 반전으로 능수능란하게 뒤바꾸는 탁월한 재능을 엑기스처럼 뽑아낸 작품들을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연극을 전공으로 하거나 생활로 하는 이들에게 많은 쓸모가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체호프의 빛나는 재능을 일반 독자들도 찾아내었으면 한다.

 많이 찾고 많이 읽고 간직하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일상에서 포착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유쾌한 웃음의 해학!

◇장막극 ‘바냐 아저씨’의 한 장면.
 러시아의 천재 작가 안톤 체호프. 그가 쓴 슈제트가 분명하고 명확한 대사가 담겨 있는 소설들은 무대에 올리는 데 훌륭한 전범을 제시한다. 러시아 소설가들이 흔히 즐기는 만연체와는 대조적으로 불과 몇 페이지밖에 안 되는 분량 속에 체호프는 모든 것을 녹여낸다. 그의 명민한 관찰력과 삶에 대한 심오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조된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형상들은 실제로 존재하리란 믿음을 갖기에 충분하다. 체호프는 언어적 표현을 충분히 고찰하여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이로써 등장인물의 성격과 사회적 위치, 직업, 버릇과 생각까지를 상세히 전달해준다.

 체호프는 일상이라는 껍질에 가려진 인간의 본질, 속물성과 허위의식을 포착하여 유머로써 승화시킨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은 인간성에 대한 긍정, 일과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의 메시지이다.

 체호프가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매우 다양해서 거의 모든 인간 계층들을 섭렵한다. 그들에 대한 작가의 입장 또한 다양하다. 가령 조금 전에 외아들을 잃고 고통스러워 잠도 못 자지만 의사라는 고귀한 직분에 복종하여 죽어가는 자를 살리기로 결심한 ‘적들’의 키릴로프에게는 인간의 슬픔까지 초월한 고결함, 박애주의를 연민을 가지고 바라본다. 욕심과 인색함이 지나쳐서 어머니와 형제의 가난마저 눈 감아버리는 ‘방앗간에서’의 비류코프나 한밤중 여인의 비명 소리를 듣고도 자신의 자그만 행복을 잃을까 모른 척하는 ‘불안한 손님’의 아르촘 같은 경우에는 가차없이 채찍질한다. 첨예한 유머로 가득 찬 ‘말에 관련된 성’에서는 무식함을 조소하며, 관료사회의 비리와 청탁에 능통해 아들의 성적마저 돈으로 매수하려는 ‘아버지’에서의 아버지나 술 취해 사고를 치고도 신문에 났다며 좋아서 흥분하는 ‘기쁨’의 미짜 쿨다로프는 날카롭고 풍자적인 색채로 그들의 속물성을 그린다.

◇체호프 장막극의 한 장면.
 “체호프는 속물성이라는 어두운 바다 속에서 그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암울한 농담과도 같은지 열어 보였다. 유머러스한 단어와 문장들 너머로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지 알기 위해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막심 고리키의 말처럼 우리는 유머러스함 너머의 체호프의 해학과 풍자의 미학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대화체를 근간으로 한 희곡이기에 되레 소설로 읽는 것보다 작품을 더 쉽고 재미있게, 간결하고 분명하게 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은이 레오니드 모이세예비치 쉬흐마토프(1887~1970)는 바흐탄고프 연극 스튜디오를 졸업하고 바흐탄고프 극장에서 배우로 활동하였으며, 슈킨연극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1946년에는 소비에트 공훈 배우 칭호를 받았다. 출연 작품으로는 ‘투란도트 공주’(1922), ‘햄릿’(1932), ‘꽃길’(1932) 외 다수가 있다.

 베라 콘스탄티노브나 리보바(1898~1985)는 1917년 바흐탄고프 연극 스튜디오에 입학하여, 바흐탄고프 극장의 배우로 활동했다. 1957년 소비에트 공훈 예술 경영인에 선정되었으며, 슈킨 연극대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출연 작품으로는 ‘조이킨의 아파트’(1928), ‘백치’(1958) 외 다수가 있다.

 옮긴이 박정곤은 경북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연극예술원(GITIS)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극장 소식지 ‘미르’와 월간 ‘우먼라이프’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모스크바 고리키문학대학교의 한러문화연구원 원장을 맡아 강의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바냐 외삼촌에 나타난 아이러니 연구’(한국어), ‘한국 전통극에 부쳐’(러시아어)가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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