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수목드라마 '대물'이 종영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 방송 초반 고현정이 보여준 동력이 힘을 잃고 있다.
'대물'은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을 그리겠다며 야심찬 첫 발을 내딛었다. 드라마 관계자가 당초 품었던 기대감에는 고현정의 존재감이 상당부분 작용했다. 고현정이란 배우가 지닌 카리스마와 흡인력있는 연기가 시청자를 끌어모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것이다.
방송 초반만 해도 이런 예측은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극중 '서혜림'이 '대통령'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게되는 과정이 그려질 때만 해도 그러했다. 현실 정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할 말 다하는 서혜림 역은 고현정이 지닌 카리스마와 어우러져 시너지를 발산했다. 시청자들은 "서혜림 역은 고현정만이 소화해 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극중 서혜림이 어딘가에서 봤음직한, 식상한 캐릭터로 변해가면서 고현정의 연기력까지 질타를 받고있다.
현재 '대물'에서 서혜림은 야권 단일후보로 선정돼 민우당 강태산(차인표 분)와 박빙의 대권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상황. 지난 15일 방송된 '대물'에서는 서혜림이 "지금은 한 남자의 사랑보다 국민 여러분들의 연인이 되고 싶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거리 유세를 펼쳤다.
드라마 속 유권자들은 서혜림의 유세에 감동한 모습이지만 시청자에게는 전혀 감흥을 일으키지 못했다. 애국심에 호소, 입 발린 소리로 이상만을 쫓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모습과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극중 서혜림은 성별만 여성으로 바뀌었을 뿐 기존 정치인과 다름 없는 모습으로 지루함만 안겼다. 현실적인 정치 공약보다 유권자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모습은 오히려 여성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 키울 뿐이었다.
또 극중 하도야(권상우 분)와의 로맨스는 서혜림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목표의식을 희석시키며 설득력을 잃게 만들었다. 연인을 향한 애틋한 감정 표현이 드러난 대사나 에피소드는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설정이지만 정치드라마를 표방하는 '대물'에서만큼은 군더더기이고 불필요한 장치였다. 이는 '대물'이 애초 보여주고자 했던 방향성을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서혜림이 정당 대변인으로서 수동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장면에서는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며 점점 강인해지는 강태산과 대조를 이루며 나약한 여성의 이미지만 부각됐다.
이처럼 서혜림 캐릭터가 변질됨에 따라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이 선보였던 발군의 카리스마를 보고싶었던 시청자들의 실망감은 더해가고 있다.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에 미실의 미세한 감정을 담아냈던 '선덕여왕'의 고현정은 '대물'에서 온데간데 없다. 서혜림이 대권레이스에 뛰어든 현 상황에서도 고현정이 전작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다. 극중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서혜림의 모습 역시 '선덕여왕'의 미실을 답습하거나 퇴보한 듯한 인상마저 주고있다.
'대물' 15일 방송분은 전국 시청률 25.7%(AGB닐슨미디어리서치)를 기록하며 수목극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드라마 전개와 캐릭터에 대한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문제점 진단은 시급해 보인다.
/ 정은나리 기자 jenr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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