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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한국출판인회의 이끄는 한철희 ‘돌베개’ 대표

입력 : 2010-11-09 22:03:09 수정 : 2010-11-09 2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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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세계 7위 출판대국이지만 독서지수는 OECD 꼴찌”
“좋은 책을 만드는 일은 참 매력적이죠. 소신대로 책을 만들어 인생의 양식에 보탬을 준다는 것은 보람된 일입니다. 그러나 사업으로서의 출판업은 결코 녹록지 않아요.”

한철희(53·사진) 돌베개 대표는 인문사회 분야 출판계에서 독보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일어서 중견 출판사 대표에 이르렀고, 6개월 전에는 430여 중견 출판사들이 등록한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에 선출되는 영광(?)도 안았다. 주변에서 볼 때 회장 타이틀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한 대표 본인에게는 힘든 자리다. 지금 같은 출판 불황기에 거대 출판 단체를 이끌어간다는 게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책’이라는 괴물이 기존 출판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비상 상황이다. 그는 사회 개혁에 뜻을 품던 청년시절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몸담았던 돌베개에 들어와 둥지를 틀었고 1993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2003년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받았고 ‘한국근대민족운동사’ ‘한국경제의 전개과정’ ‘전태일평전’ 등을 출간했다. 9일 한 대표를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 집무실에서 만났다.

―출판계에 몸담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긴조(긴급조치)세대’로 고생 좀 했죠.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9년 10월 지하신문을 발행했는데 결국 도피 도중 잡혀 수감됐죠. 이젠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10·26 사태가 터지면서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면소판결을 받아 11월 말 출소했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죠. 강제 징집으로 군에 갔다 오고, 그 사이 세상은 살벌한 군사 정권으로 바뀌었지요. 당시 이해찬씨가 돌베개를 창업해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돌베개 번역일을 맡아 하다 아예 눌러앉았습니다.”

―출판업은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나요.

경기가 좋지 않은 요즘 출판사업이 힘들 텐데.

“불황의 한파를 심하게 타는 곳 중의 하나가 출판업이죠.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많은 책을 읽고 연구하며 위기를 타개해 나갈 방도를 찾아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정반대입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긴축 경영에 나서는 것처럼 개인도 씀씀이를 줄이는데 으레 책 구입부터 줄입니다. 출판사들은 특히 요즘 같은 때를 가장 견디기 어려운 보릿고개에 비유합니다. 1년 중 책이 가장 안 팔리는 때죠. 독서의 계절이 가을이란 말은 옛 이야기가 돼버렸습니다. 주말이면 도로를 가득 메운 나들이 차들을 보세요. 아이들과 함께 서점으로 주말 나들이를 하면 누이 좋고 매부도 좋을 텐데…. 그래도 나는 지난 4월 펴낸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가 18만부 이상(10월 말 기준) 팔려나가 버틸 만합니다.”

―우리나라의 책 문화를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출판대국입니다만 독서지수는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도서관 수, 장서량, 도서구입 예산, 국민 1인당 독서량 등에서 낮은 수준이죠.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다는 의미인데, 풍부한 인재로 책 만드는 의욕은 넘치지만 책 사는 데는 인색합니다. 출판산업의 거품과 취약성을 드러내는 현상입니다. ‘출판대국’보다는 ‘독서대국’이 ‘바람직합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들은 촘촘하게 짜인 도서관망(동네 도서관에서 국립도서관까지)이 일품입니다. 이 도서관들은 풍부한 장서를 갖추고 매년 신간 구입에 많은 예산을 들입니다. 이런 게 국민의 양식이고 경쟁력이 되는 겁니다. 정말이지 국가적 차원에서 ‘독서강국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합니다.”

―돌베개를 선택한 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돌베개는 1979년 이해찬 전 총리가 만들었습니다.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인 ‘돌베개’에서 이름을 따왔죠. 1983년 돌베개에 입사하면서 출판에 입문했는데 이것이 평생 직업이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당시 사회과학 출판 종사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출판을 사회정치적 변혁 운동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주류였죠. 출판을 통해 사회변혁을 이끌어보자는 생각에서 출판사에 입사한 젊은이들이 많았어요. 그간 사회가 민주화로 이행하면서 정치 색깔이 옅어졌지만 ‘좋은 책으로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은 여전히 출판인들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출판계에는 성공적인 2세, 3세 출판인이 많습니다. 규모가 작은 출판기업의 특성에서 비롯됐는데, 지식산업의 연속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직접 경영을 해보니 어떻습니까. 오랫동안 좋은 출판사의 이미지를 유지한 비결이 있습니까.

“돌베개 같은 인문서 위주의 출판사는 시장 규모가 작아 돈 벌기가 쉽지 않습니다. 만든 책이 학문적으로 사회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책이 많이 팔린다면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죠. 자랑 같지만 지난해 모 시사주간지가 한 해 출판을 결산하면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돌베개가 3년 연속 ‘신뢰할 수 있는 출판사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단단한 책 만들기의 자세를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인문학 중심의 출판을 꾸준히 했던 점이 좋은 평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요즘 출판계의 최대 화두는 ‘전자책’입니다. 전자책이 기존 출판시장에 태풍을 몰고 올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뒤섞여 있는데요.

“전자책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면서 종이책 출판의 운명을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이책 출판의 운명이 비관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전자책 시장이 확대돼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사실은 명확합니다. 이런 추세에 맞춰 전자책의 장단기적 발전 방향과 전망에 대한 조사연구를 수행하는 ‘전자출판연구소’의 설립이 시급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연구소를 설립해 전자책시장에 대한 전망과 대응 방안을 제시할 것이며, 출판사들은 지금처럼 콘텐츠의 생산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연구소 설립과 운영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한국출판인회의는

한국출판인회의는 순수 민간단체로 430여 출판사가 회원으로 가입됐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출판인들이 어려움에 공동대처하자는 뜻에서 발족했으며, 단행본 출판사들이 대부분 회원사로 등록됐다. 또 다른 출판인 단체로는 900여개 출판사가 가입된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가 있다.

한철희 회장은 “출판은 가장 대표적인 인력산업으로서 우수인력 양성이 출판업 발전의 관건”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출판인회의는 자체적으로 인력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예컨대 7년 전부터 ‘서울북인스티튜트’(SBI)라는 전문 교육기관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이는 출판사에 재직 중인 편집자, 영업자, 디자이너 등을 대상으로 한 능력 향상 교육프로그램이다. 아울러 6년 전부터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출판예비학교’라는 신규인력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다. 일종의 출판사관학교 격이다. 편집자 과정, 마케터 과정, 디자이너 과정의 3개 반에 각 20여명씩 60여명의 학생을 6개월 동안 교육해 출판사에 취업시키고 있다. 95% 이상의 취업률을 자랑한다. 노동부의 취업 지원사업 중 가장 알차고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난 1일부터는 경쟁을 뚫고 선발된 6기생 69명의 학생들이 6개월 과정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내년 봄 출판사에 취업한다. 한 대표는 “기본적으로 출판산업은 국민들의 독서문화를 지원하는 수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출판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과 국민 수준을 가늠할 잣대라는 점에서 출판업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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