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격 판정
세 권의 노트와 몇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요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노트에는 수기가 기록돼 있었는데 거기에는 상당히 흥미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나는 요조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 한 사람의 인생과 일치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요조의 수기를 그대로 소설에 옮겼다고 했다. 머리말에서는 세 장의 사진에 대해, 후기에는 수기를 입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요조는 누가 보아도 그 자신, 다자이 오사무가 분명했다.
“변명하진 않겠어. 요조는 나의 일부이기도 하지.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고.”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은 무엇이었나요? 알코올 중독, 마약, 자살방조… 정신병원에 입원한 일이었나요?”
“모든 게 다 부끄러워. 태어난 것도 미안한 일인 걸.”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았던가요? 사람들과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서요.”
“다 소용없는 일이었어. 실격 판정을 받았으니까. 내 이마엔 인간실격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렸지. 나는 모든 면에서 열등한 존재였으니, 그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이야. 내게는 오직 나 자신만이 적이고 현실이었어.”
“당신은 겁쟁이군요.”
“맞아, 난 비열한 겁쟁이야. 하지만 당신들은 더 야비한 겁쟁이들 아니던가. 관두자고, 다 소용없는 일이야. 모든 것은 그저 다 지나갈 뿐이니까…….”
피에로의 나날들
세 장의 사진들 중 한 장은 유년 시절의 사진이었다. 굵은 줄무늬 예복을 입고 정원 연못가에 서서 고개를 왼편으로 기울인 채 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웃는 얼굴이 아닌 음산하고 불길한 얼굴이었다. 얼굴에 추한 주름만 짓고 있는 원숭이 같은 얼굴이었다.
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도호쿠 시골 마을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덕분에 배고픔을 모르고 자란 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우리 집의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어슴푸레한 방안에서 십여명의 식구들이 각자의 독상을 차지하고 앉아 묵묵히 밥 먹는 모습을 보면 항상 소름이 끼쳤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내게 무척 위협적으로 들렸습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광대 짓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구애(求愛)였습니다.
나는 여름이면 얇은 옷 안에 빨간 털스웨터를 입고 복도를 돌아다니며 집안 사람들을 웃겼습니다. 그러면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 큰형도 그걸 보고 웃음을 터뜨리며, “어이, 요조, 그건 안 어울리지.” 귀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말했습니다. 언제던가, 아버지가 도쿄 출장을 가시기 전날 밤, 우리 형제들을 불러,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보셨습니다. 내 순서가 오자 나는 어물어물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어떤 것도 나를 즐겁게 해주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곧장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자 아버지는 시들해져서 수첩을 탁 덮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곧 나의 실수를 깨닫고 아버지의 복수를 두려워하다가 그날 밤 살며시 일어나 응접실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수첩을 꺼내 거기에 ‘사자탈’이라고 써놓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했던 모험이었습니다. 짐작대로 그 일은 큰 성공을 거두어 아버지를 즐겁게 했습니다. 그 외에도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로 통했던 나는 일부러 실수를 만들어 이른바 ‘장난꾸러기’로 나를 위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본성은 그것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즈음 나는 이미 하녀와 하인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으나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해 봐야 결국 처세술 뛰어난 사람들의 말만 믿을 게 뻔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가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우울의 가람 속을 헤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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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_정길재] |
겁쟁이는 행복조차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솜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바닷가, 스무 그루가 넘는 산벚나무가 바다를 배경으로 찬란한 꽃을 피우는 곳.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이 바다에 떨어져 물 위를 떠돌다 파도와 함께 다시 해변으로 돌아오는 곳, 그 벚나무 모래사장을 교정으로 사용하는 도호쿠의 어느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작한 타향살이였습니다. 거기서도 나는 능숙한 광대 짓으로 어려움 없이 아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의도를 낱낱이 간파해낸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다케이치라는 아이였습니다. 그로부터 나는 우연히 내 인생의 낙인이 될 두 가지 예언을 들었는데 그 하나는, 여자가 내게 홀딱 반할 것이라는 것과 내가 장차 화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마에 두 개의 낙인을 새긴 채 나는 도쿄로 왔습니다.
고지식한 아버지로 인해 미술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나는 도쿄의 고등학교에 합격해 기숙사로 들어갔다가 단체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아버지는 의회 기간이 아닐 때 숙소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학교도 결석하고 화방을 드나들었는데 거기서 호리키라는 한 미술학도를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술과 담배, 매춘부와 전당포, 좌익사상을 배웠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도피 수단이 되어 주었습니다. 나는 속된 말로 매춘부의 품에서 안식을 찾았고 여자를 배웠습니다. 어느 날은 호리키를 따라서 ‘공산주의 독서회’라는 비밀 모임에 참석해 이른바 유물론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내게 ‘비합법(非合法)’의 편안함을 주었고 ‘음지인(陰地人)’으로서 ‘죄의식’의 지옥 속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휴식을 주었습니다. 당시 내 마음은 공산당원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받는다 해도 끔찍한 세상의 ‘실생활’보다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의원 임기가 끝나자 혼자 하숙을 하게 되면서 내 생활은 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세 명의 여자를 알게 되었는데 머물던 하숙집의 딸과 고등사범학교 문과생, 그리고 카페의 여급이 그들이었습니다. 난생처음 여급인 쓰네코에게서 삶의 신산함을 본 나는 친밀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급속히 빠져들었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다 떨어졌을 때 나는 쓰네코와 함께 바다에 투신했습니다.
여자는 죽고 나 혼자 살아남았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마지막 사진은 가장 괴기하다. 지저분한 방의 한쪽 구석에서 작은 화로에 두 손을 쬐고 있었다. 반백의 머리칼과 무표정한 얼굴.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음산하고 불길한 인상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인상조차 없었다. 시선을 떼면 도무지 단 하나의 잔상도 남지 않는 특징 없는 얼굴이었다. 사람의 몸에 말의 머리를 붙이면 이런 느낌일까.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이상한 얼굴의 남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미처 다 마시지 못한 한 잔의 압생트… 나는 영원히 보상받기 어려운 상실감을 나 혼자 그렇게 표현합니다.
내게 다양한 쾌락의 방법을 설파했던 호리키는 안과 밖을 구분하며 살아가는 도쿄 사람의 적나라한 실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충격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집에서 우연히 만난 여기자와 동행하다가 엉겁결에 그녀의 아파트까지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어린 딸과 함께 외롭게 살고 있던 시즈코는 자신이 다니는 잡지사에 내가 연재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주선을 해주었습니다. 일 년이 지나 벚나무에 새잎이 돋을 즈음, 나는 아파트를 나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모녀의 소박한 행복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바시 근처 스탠드바 2층에서 나는 다시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놈팡이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술집 건너편 담뱃가게의 열 일고여덟 살의 아가씨를 만났습니다. 이름은 요시코, 살빛이 희고 덧니가 있는 아이였습니다.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처녀였던 요시코는 내게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호리키가 놀러왔던 어느 날,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호리키와 나는 옥상에서 희극명사와 비극명사, 반의어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음식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 호리키가 금세 불길한 낯빛이 되어 다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급히 옥상에서 내려와 2층으로 갔습니다. “저거 봐!”
환한 전깃불 아래 두 마리의 짐승이 보였습니다. 실로 그건 내 생애의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요시코가 겁탈을 당한 것입니다. 오며 가며 드나들던 장사꾼에게 속아 생긴 비참한 사건이었습니다. 나의 흰머리는 그날 밤부터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가 됩니까.
저항하지 않은 죄인, 인간실격자
이 수기를 쓴 광인(狂人)은 내가 직접 아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수기에 등장하는 교바시 스탠드바의 마담으로 짐작되는 사람은 조금 알고 있다. 그녀는 10년쯤 전에 노트와 사진이 든 소포를 받았다고 했다. 보낸 사람은 요조로 추측되었지만 겉봉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마담은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센스 있고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아니, 마셨어도… 하느님 같이 착한 아이였어.”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이른바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라고 생각되는 건 그것뿐입니다.
천진무구한 신뢰심은 죄가 되는가. 유일하게 기대를 걸었던 미덕에까지 의혹이 생기자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굴 표정은 극도로 비열해졌고 아침부터 소주를 마셔서 이가 듬성듬성 빠지고 춘화를 모사해서 밀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연말 나는 요시코가 감춰둔 치사량의 수면제 갑을 발견했습니다. 가엾게도 영어를 몰랐던 요시코는 봉지를 뜯지 않은 채 라벨의 반만 벗겨내 상자를 부엌의 설탕그릇 속에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나는 봉지를 털어 알약을 한꺼번에 입안에 털어놓고 잤습니다. 사흘 밤낮을 잤다고 합니다. 깨어나기 전에 ‘집에 가겠다’는 헛소리를 중얼거리며 몹시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 나는 집을 나와 낯선 온천 지역을 헤매며 술을 마시다가 다시 도쿄로 돌아왔습니다.
불행. 이 세상에는 온갖 불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불행은 모조리 내 죄악에서 나온 것이라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습니다. 나는 최초의 객혈을 본 후 약국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약국에는 목발을 짚고 위태롭게 서있던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남의 불행에도 민감한 법이라 나는 부인 또한 불행한 사람이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부인과 몸 상태에 관해 상담한 후 나는 몇 가지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술을 마시고 싶어 견딜 수 없을 때 먹는 약도 있었습니다. 모르핀 주사액이었습니다. 알코올이라는 사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에 나는 망설임 없이 팔에 그 주사를 놓았습니다.
주사를 맞고 나니 작업에도 열의가 생기고 웃음이 터질 만큼 오묘한 창조 능력이 생겼습니다. 하루 한 대만 맞으려는 것이 두 대가 되고 네 대가 됐을 즈음, 주사가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완전한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약품을 손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춘화를 모사하고 불구의 약국 부인과 문자 그대로 추악한 관계까지 맺었습니다. 고뇌는 날로 커져가고 강렬해졌습니다. 죽고 싶다. 죽어야 한다. 살아 있는 게 죄의 씨앗이다.
죽으려고 결심한 날, 넙치가 악마적인 감으로 냄새를 맡은 듯이 호리키를 데리고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처음엔 그곳이 폐결핵 요양소인 줄만 알았습니다. 철컥, 열쇠가 채워졌습니다.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인간실격.
나는 완전하게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석 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3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나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갑니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흰머리가 엄청나게 늘어서 사람들은 대개 마흔 넘은 나이로 봅니다.
■ 작가와 작품 소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년 아오모리 현 기타쓰가루에서 귀족원 의원인 지방 화족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쓰시마 슈지이다.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동경하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습작 활동과 문학 동인지 발행을 주도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좌익 운동에 경도되어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동인지 ‘세포문예’를 발행하기도 했으나, 자신이 속한 계급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가 1929년 첫 번째 자살을 시도했다.
1930년, 프랑스 문학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도쿄대학 불문학과에 입학하지만, 좌익운동 등으로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아 중퇴했다.1933년 ‘선데이 도오’지에 단편 ‘열차’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분게이’지에 발표했던 ‘역행’이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르고, 첫 번째 작품집인 ‘만년(晩年)’이 간행되면서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작품을 써내는 동안에도 몇 번의 자살을 시도하는 등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던 다자이는 결혼과 동시에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집필에 몰두했다. ‘후지산 백경’ ‘달려라 메로스’ 등 유려한 단편을 다수 발표했으며, 전쟁 중에도 ‘쓰가루’ ‘오토기조시’ 등 밝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의 작품을 발표했다.
1947년, 몰락 귀족을 그린 장편소설 ‘사양’이 널리 알려지면서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1948년, 그의 최고의 작품이라 손꼽히는 ‘인간실격’ ‘앵두’ 등을 집필한 후 강에 뛰어들어 39세의 생을 마감한다.
옮긴이 양윤옥은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번역해, 2005년에 일본 고단샤가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번역한 책으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장송’ ‘센티멘털’,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납장미’,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장미 도둑’, 그 외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 ‘약지의 표본’ ‘너덜너덜해진 사람에게’ ‘붉은 손가락’ ‘남쪽으로 튀어’ ‘유성의 인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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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지음, |
주인공 오바 요조가 스스로 화자가 되어 자신의 부끄럼 많은 일생을 풀어놓는 수기 형식의 소설로, 다자이 오사무의 내적, 정신적인 자서전이다. 마치 작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기 위해 쓴 것 같은 이 작품은, 독자를 의식하며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던 그간의 작품과는 명백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작가가 ‘타자를 위해서’라는 윤리의식을 내버리고 자신만을 위해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오바 요조의 광대 같던 어린 시절, 난봉꾼 같았던 청년 시절의 고백은, 다자이 오사무가 작가가 아닌 한 개인으로 돌아가 술회하는 것처럼 쓰여져 있어 아마추어적인 문체가 도드라진다. 문장가 다자이 오사무가 아닌 부끄럼 많은 생을 살다 간 한 사내의 고백을 담기 위해 의도적으로 쓴 작품인 것이다. 그는 일본문학계의 영원한 이단아이자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가장 인간적인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작품 속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
요조에게
무엇이 우리의 인생으로부터 생기를 앗아가는 것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반백의 소년, 홀든, 소년이면서 노인의 인상을 지닌 비운의 주드.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당신 요조에 이르기까지 젊은 나이에 너무 빨리 머리가 세어버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사람은 왜 한순간에 늙어버리는 걸까요?
삶이 우리의 인생이, 이야기가 우리를 시간으로부터 소외시켜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대부분 그들은 너무 빨리 알아챕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성급하게 발설해 내는 힌트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비밀스러워야 하고 이야기는 천천히 진행되어야 하며, 삶은 이르게 결딴나지 않아야 합니다.
요조, 당신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 세간의 고단함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지요. 무지는 불안의 원인이었고 불안은 당신으로 하여금 광대짓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통 불신의 사례들로 가득 찬 그런 위선적인 세상이었지요. 하지만 언제나 맑고 밝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가 다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고독을 숨기고 사느라 늘 바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지요. 사람들은 상처받기 두려워하고 작은 흠집에도 놀라 소란을 피우곤 합니다. 당신은 화난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가 자신의 꼬리로 배의 등에를 쳐 죽이는 것에서 전율을 느꼈습니다. 인간의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이지요. 당신은 그 파괴성이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자기를 과잉보호 하느라 타인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기가 일쑤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것은 맑고 밝고 씩씩한 것으로 위장돼 있습니다. 요조, 당신은 그것을 처세술에 능한 사람들의 세계라고 말했지요. 일찌감치 침묵을 선택해버린 것도 그것을 배우지 못한, 알지 못한 당신의 무능을 스스로 인정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강한 자들의 변명만이 살아남아 정답이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그래서 아비규환의 세상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철학자들은 그것을 소외로부터의 도피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당신은 그 도피에서조차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측은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불행한 일생에 공감하면서, 마음에 격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것조차 비밀로 부쳐야 합니다. 우리의 약한 모습을 그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태어나서 미안하다는 당신, 나는 더 미안합니다.
비겁하게도 당신을 이해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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