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덕한 정치인’ 정평… 조율의 달인

시 부주석은 지난해 12월 한국 방문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이견은 남겨둔다)’ 정신을 강조했다. 그는 “양국이 의견이 일치하는 것부터 조속한 시일 내에 협상에 착수하기를 바란다”며 실용적 가치관을 드러낸 바 있다.
시 부주석이 13억 중국의 차기 대권을 예약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시 부주석은 2007년 봄 상하이시 당서기였던 천량위(陳良宇)가 비리 사건으로 낙마하면서 중앙정치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호기를 맞았다. 당시 저장(浙江)성 서기로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상하이방 황태자였던 천량위의 빛에 가렸던 시 부주석은 리커창(李克强) 현 부총리를 제치고 상하이 당서기로 발탁됐다. 7개월 뒤에는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도약하며 사실상 차기 후계자로 낙점됐다. 2008년 3월 국가부주석에 임명된 그는 베이징 올림픽을 전담해 성공적으로 치러내면서 승승장구했다.
시 부주석은 국무원 부총리와 광둥(廣東)성장, 광저우 군구(軍區) 정치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국회부의장 격) 등을 지낸 시중쉰(習仲勛)의 장남이다. 부친도 당·정·군에서 활약하면서 정적이 없을 정도로 대인관계가 원만했으며 이는 시 부주석이 권부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그는 1953년 6월 베이징에서 태어났으며 문화대혁명(1966∼76년) 시절 16세 때 ‘지식청년’으로 분류돼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촌에서 강제노동을 하기도 했다. 시 부주석은 이어 명문 칭화(淸華)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중앙군사위 판공실에서 군 경력을 쌓았고, 82∼83년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에서 서기로 부임했다.
그는 85년 푸젠(福建)성 샤먼(廈門)시 부시장으로 이동해 2002년까지 17년간 푸젠에서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 시절 시 부주석은 중국의 국민가수로 인민해방군 가무단장인 펑리위안(彭麗媛)과 결혼했다. 외동딸인 시밍쩌(習明澤·18)는 지난 9월 학기 하버드대에 입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베이징=주춘렬 특파원 clj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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