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날개 플라밍고 떼 호숫가서 화려한 군무 응고롱고로 동물보호구역으로 가는 길은 황톳길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안개가 자욱하다. 인적이 드문 길에는 가끔 창과 활을 멘 채 소떼를 몰고 가는 마사이족 사람들이 보인다. 마르고 늘씬한 체형의 마사이족은 대부분 유목민이다. 마사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사용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죄라고 믿는다. 마사이족의 기도 중에는 “창조자여, 우리에게 소와 아이들을 주소서!”라는 구절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이들에게 소의 존재는 중요하다. 일부다처제를 행하고 있는 마사이족의 남자들이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도 많은 소가 필요하다.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고 있는 마사이족 출신의 기사는 친척 중에 소 3000마리를 가지고 있는 73세의 노인은 10명의 아내를 두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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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날개를 가진 플라밍고들이 응고롱고로의 마가디 호수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우아하게 하늘을 날던 플라밍고 떼가 생각난다. |
그는 마사이족 전사(戰士)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남자들은 17세에 맹수를 사냥하고 나서야 전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마사이족은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용맹스러운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도 마사이족 남자들은 맹수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늘 창과 칼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사자들은 마사이족 남자들이 걸치고 다니는 붉은 망토의 색과 창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다가오지 않는다고 한다.
캠프장을 떠나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고원지대에 도착했다. 야생동물을 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응고롱고로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응고롱고로의 모습은 참으로 독특하다. 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치 잠실경기장처럼 생긴 분지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마사이어로 ‘커다란 구멍’이라는 뜻을 지닌 응고롱고로는 약 250만년 전 화산이 폭발하면서 무너져 내려 분지 모양의 땅이 됐다. 원래 화산의 높이는 킬리만자로 산보다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타원형의 분화구이다. 분화구의 깊이는 610m, 가장 넓은 곳은 직경 22.5㎞에 이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큰 분화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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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백화점’이라고 불리는 응고롱고로 분지. 약 250만년 전 화산이 내려앉아 생긴 타원형의 분화구에 3만 마리 가량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
응고롱고로 고원지대에서 분화구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다. 사파리 지프가 뒤뚱뒤뚱 몸을 흔들어가며 험한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응고롱고로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니 한쪽에는 나무숲이 보이고 넓은 초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응고롱고로 분지는 500∼600m 높이의 산들이 사방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이런 자연환경 때문에 응고롱고로 분지의 야생동물은 계절마다 먼길을 이동하는 세렝게티 초원의 동물과는 달리 대부분 일생 동안 이 안에서 살아간다. 이 분지에는 숲이 우거진 산, 사철 내내 먹을 것이 풍부한 초원, 호수, 늪지대 등 동물들이 생활하기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응고롱고로 분지가 ‘야생동물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약 3만마리의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응고롱고로 분지의 동물 가운데 절반 정도가 얼룩말과 누라고 한다. 이외에도 표범, 치타, 하이에나, 코끼리, 버펄로가 서식한다. 탄자니아에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흑색 리노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몇 시간 만에 ‘빅 파이브’ 중 표범을 빼놓고 모두 보았다. 응고롱고의 동물보호구역을 ‘야생동물 백화점’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실감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 가운데 응고롱고로에 없는 동물이 하나 있다. 바로 기린이다. 기린은 분화구의 가파른 양 옆을 내려갈 수 없고 아카시아 나무 같은 먹이가 없어 이곳에서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응고롱고로 분지의 한쪽으로 가니 커다란 호수가 보인다. 분지 한가운데에 있는 마가디 호수다. 호수 주변에는 핑크빛 날개를 가진 플라밍고 떼가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비행기를 따라 하늘을 나는 바로 그 플라밍고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호수 위에 가녀린 다리를 딛고 서 있는 플라밍고의 모습은 마치 무대 위의 발레 무용수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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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마을에 들어서니 마사이족 남성들이 한 손에 긴 막대기를 들고 하늘로 뛰어오르는 춤을 추면서 손님을 맞이한다. |
다시 초원으로 돌아가자 얼룩말이 무리를 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인다. 얼룩말 옆에서는 누 떼들도 평화롭게 풀을 뜯는다. 얼룩말과 누가 함께 모여 있는 것은 이들이 상부상조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누는 색맹이지만 먼 밖의 냄새까지 감별할 수 있는 후각을 지니고 있다. 반면 얼룩말은 후각은 좋지 않지만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서로 뜯어먹는 풀의 종류가 달라 먹이를 두고 싸우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서로 뭉쳐 다니면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생존을 위한 이들의 전략적 동거가 놀라울 따름이다.
응고롱고로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일행은 ‘마사이 보마’에 들렸다. 마사이어로 ‘마사이 마을’이라는 뜻이다. 세렝게티와 응고롱고로 지역은 수백년 동안 마사이족이 여러 가축을 기르면서 살아온 곳이다. 사파리 차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니 마사이족 남녀들이 춤을 추면서 우리 일행을 맞이한다.
남성들은 긴 막대기를 들고 차례로 껑충껑충 하늘 높이 뛰어오르면서 춤을 춘다. 마사이 특유의 춤이다. 마사이 사람들은 남녀 모두 구슬모양의 장식을 한다. 화려한 치장을 하는 것도 마사이족의 특징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사이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집 주위는 모두 나무 울타리가 쳐져 있다. 집은 쇠똥과 진흙을 섞어 만든다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방 한가운데 화로가 놓여 있고, 땅 바닥에는 나뭇가지를 깔아 만든 침대가 펼쳐져 있다. 집 안쪽은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서인지 더운 기운이 느껴진다. 집안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니 아낙네들이 집 울타리에 마사이 목걸이와 팔찌를 매달아 놓고 팔고 있다.
마사이 마을을 구경하고 아루샤로 돌아오는 도중 차장 밖을 바라보니 저 멀리 올두바이 계곡이 보인다. ‘인류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올두바이 계곡은 인류의 먼 조상이 살았던 곳이다. 인류의 시원(始原)이 되었던 땅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난 70일간의 동아프리카 여행길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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