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둔감·사정에 민감한 정치권
집중타 땐 여야 집단대응 할 수도
‘공정’의 칼춤은 위험한 게임이다. 스스로 베일 요인이 많아서다. 우선 기득권층의 반발과 저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 실현 과정에서 고통받고 손해 볼 ‘가진 자’, ‘힘센 자’들이 고분고분할 리 만무하다. 또 원칙, 기준이 없는 ‘막춤’의 부작용이다. 마녀사냥,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인사를 비롯한 기존 정책도 걸림돌이다. ‘공정화’를 위한 손질 도미노가 불가피하다. 이 대통령은 한꺼번에 세 개의 칼날을 받아야 하는 처지다. 한시라도 긴장하지 않으면 제풀에 드러눕기 십상이다.
“우리가 그럼 여태껏 불공정한 사회에서 살았다는 말인가.”
과거 정부 장관 출신 여권 인사는 6일 ‘공정한 사회’에 대한 불쾌감을 쏟아냈다. 기득권층의 ‘사회’가 한순간 부정당했다는 인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설령 그렇다면 남에게 희생을 요구하기에 앞서 이 대통령부터 참회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이 대통령이 전날 천명한 ‘공정한 사회’ 만들기는 사실상 보수 기득권 세력의 고통 분담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간 이들의 자발적 기여가 부족했던 만큼 ‘사정’(司正)이라는 강제적 수단이 동원될 게 뻔하다. 공직사회와 정치권을 두들겨 민간영역도 다스리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사정의 공평성이다. ‘공정한 사회’의 진정성과도 직결된다. 보수진영이 사정의 집중타를 맞으면 거부감이 퍼질 수밖에 없다. 누가 뭐래도 현 정부 지지기반은 이쪽이다. ‘집토끼’ 가출이 심해지면 원심력이 작용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일차적 시나리오다. 최근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고 한다. 특히 희생에 둔감하고 사정에 민감한 정치권이 변수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여당 양보를 수차례 촉구했었다. 그러나 된 게 없다.
또 ‘금배지 사정’은 여야를 떠나 국회의 집단 대응을 부를 수 있다. 국정부담 가중과 ‘공정 드라이브’ 약화를 초래할 요인이다. 안이한 화두 제기 방식에 비판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친서민 가치가 ‘대기업 때리기’로 훼손되듯이 공정한 사회도 사정 때문에 권력 유지용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 실패 사례가 교훈으로 꼽힌다.
허범구 기자 hbk10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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