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다섯의 겨울, 나는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남자와 연인이 되었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사 '첫 눈에 반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찾아온 사람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반했구나' 하는 생각보다는 '마치 내가 영화 속 여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자신이 특출나게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에 처음엔 그 남자의 말에 코웃음을 흘리고 가던 길을 그대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집요했다. 내가 들어가려던 카페에 함께 들어와 내 친구들과도 말을 섞으면서 나와의 대화를 시도하려 애썼다. 친구들은 너의 '운명의 남자'라는 말까지 하며 낯선남자와 인연을 맺을 것을 종용했다. 20대를 훌쩍 넘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와 내가 했던 게 '사랑'이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놀음'이었을까? 쉽게 정의내리기 힘들 듯 하다.
연극 [클로져]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갔다. [클로져]는 문근영이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연극에 별 관심이 없던 일반인들까지 극장으로 불러모으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을 보러간다고 하자 연극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질문보단 문근영 연기가 어떤지 말해줘란 말이 주류를 이루었다.
문근영은 20세 전후의 앨리스란 여성을 연기한다. 열정적으로 사랑에 임하며 '완전한 사랑'을 믿는 인물이기도 하다. 연극을 보다보면 등장인물 누군가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대개는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기 쉽다. 이날은 누구 한 사람만의 감정선을 오롯히 따라가긴 힘들었다. 엘리스, 댄, 애나, 래리 네명 모두에게서 내 모습과 옛 애인의 흔적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연극에 대한 사전 지식이란 달랑 '문근영이 스트립 댄서로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였다. 아! 연극 제목에 대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며 조금 고민을 했다. 이게 남녀가 클로즈(close)’의 비교급 형태로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만 가까워질수록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인가? 그게 아니면 상대에게 다가가는 문이 완전히 닫힌다는 ‘클로져(closer)’란 의미인가? 연극을 본 후에 든 생각은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두가지 의미가 다 들어있구나였다.
댄은 앨리스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잠시 앨리스와는 다른 이미지인 애나라는 여자에게도 첫눈에 빠져든다. 이게 나와는 상관없는 사건일때는 '댄. 이 남자 뭐니? 맨날 첫 눈에 빠진대'하고 한마디 뱉어주면 끝이다. 하지만 이게 나와 상관있는 사건일땐 달라진다. 나의 낯선 남자는 처음엔 나의 외모를 좋아했다. 도도하고 지적인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그 다음엔 좀처럼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나의 마음을 열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게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했음은 두말할 것 없다. 그때까지 나는 낯선 남자 머리 위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의 변함없는 정성에 나 역시 그 남자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예전엔 그의 '사랑한다' 말에 못들은 척 딴 이야기로 넘어갔다면, 이젠 '나도'라는 말로 소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파국을 불러올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자 그 남자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어떤게 특별하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눈치 챈 것이다. 뭐. 예전엔 거리에서 억지스럽게 내 어깨를 감싸안으면서 내 남자친구라는 걸 뽐내고 싶어했다면 이젠 뻐기듯이 팔짱을 내 놓으며 나보고 직접 팔짱을 끼라고 명령아닌 명령을 하는 거였다. 우리 둘 사이에 균열이 간 건 내 낯선 남자가 나와는 다른 이미지의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엔 그저 잠시 사랑이 식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팽팽한 사랑의 끈이 아프게 '탁' 끊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우린 예전의 몰랐던 관계로 돌아가자라는 말을 동시에 꺼냈다.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 차 '또 첫눈에 반한 사랑이니? '라는 질문을 던졌다. 도도한 여자가 좋다고 말하던 그 남자는 어디가고 다정다감하고 남자에게 복종적인 여자가 자신의 이상형이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 여자가 나보다는 더 자기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고백하자면, 20대엔 그 낯선 남자의 말이 두고 두고 밟히며 잊혀지지가 않았다. 아니 내가 세상을 살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100% 신뢰감을 줄 수 없게 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 낯선 남자가 처음에 날 보자마자 한 말이 진실이었을까?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한 말이 진실이었을까? 정답이 없는 두가지 질문을 눈 앞에 던져두고 많은 시간 방황을 하며 보냈다. 사랑 앞에 진실은 다 거짓임을 몰랐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난 완전히 앨리스 같지도 않고 애나 같지도 않다. 두 여자의 속성을 반반씩 같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 하다. 댄을 향해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앨리스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단지 조금 귀를 통해 들려지긴 하는 '사랑'에 대해 슬프게 토로한 뒤 댄을 마음 속에서 완전히 밀어내 버린다. 그 장면에선 난 그 낯선 남자와 헤어진 순간을 떠올렸다. 아직도 그 시절 기억을 내 몸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말이다. 연극 속 애나는 대략 이성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신의 사랑 앞에서는 수족관의 물고기들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존재로 나온다. 나 역시 그러했다. 저돌적으로 돌진해오는 사랑 앞에 맥을 못 추었으니 말이다.
연극 속에선 앨리스와 함께할때 댄의 모습과 애나와 함께할때 댄의 모습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비춰준다. 그 장면에선 그 낯선남자도 이렇게 두 여자 사이에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겠지. 하는 생각에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애나는 말한다. 남자들은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기 보다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그 감정들을 사랑한다고. 여자가 보기엔 애나 말대로 정말 그랬다.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에 대한 설레임으로 충만하다. 새로운 여자에게서 받게되는 신선한 기분에 흥분 하는 것이다. 그 후 저 도도한 여자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소유욕, 정복욕으로 가득하다. 이 여자가 내 여자가 되는 순간 신선함은 쏴악 사라지고 유행에 뒤처진 옷을 입고 명동 한복판에 서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할 낯선여자를 원하게 된다. 이젠 행동으로 옮길 차례이다. 눈길을 사로잡는 후레쉬한 여성에게 접근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을 들먹이면서.
20대때 난 "사랑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었던 '사랑 아닌 감정'에 놀아난거야"하며 가슴 속 생채기를 어루만졌었다. 연극을 통해서 난 제대로 알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천차만별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는 걸 말이다. 즉, 사랑 앞에서 진실은 순간일 뿐이다. 그 순간이 지난 뒤 진실은 다 거짓이다. 난 이제서야 그 낯선 남자와 제대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영원히 안녕. 내 낯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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