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쿠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마쓰시마 해안길·석비·사찰 등 300년전 시인의 여로 쫓아가니 쓸쓸한 나그네의 정한 되살아나
매미가 올여름에는 유난히 더 크게 자주 우는 것 같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 등장했던 ‘부부젤라’에 빗대어 ‘매미젤라’라고 원망하면서 제발 잠 좀 자자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일본 류사쿠지(立石寺)는 매미소리 때문에, 그 소리를 하이쿠로 새긴 바쇼 때문에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니, 매미도 장소를 가려가며 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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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사쿠지(立石寺) 경내의 울창하고 높은 삼나무 숲 계단 길. |
과연 그 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울창한 삼나무들을 양편에 거느린 10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깊고 고요한 곳이었다. 계단의 중간쯤에 ‘매미총’이라는 한글이 함께 적힌 안내문이 서 있다. 말 그대로 ‘매미 무덤’이라는 의미인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쇼의 대표적인 하이쿠를 듣지 못했다면 이해하지 못할 명패이다. 바쇼는 절벽을 돌아 바위를 기다시피 해서 올라가 불각(佛閣)에 참배했고, 주변의 뛰어난 풍경이 적막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마음이 맑아져 가는 것만 느껴졌다고 기록했다. 그 여정에 매미가 등장했고, 1689년 5월 27일 그는 이렇게 썼다.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바쇼가 들었던 매미 울음소리도 고요한 산사를 뒤흔들 만큼의 위력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고요한 산사이기에, 아무리 매미가 목청을 높여도 그 소리는 적막을 더 부각시킬 따름이었을 테다. 그리하여 심지어 바위 속까지 스며들 정도라는 느낌은 정작 죽은 바쇼만 모를 뿐 두고두고 남는 명구가 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매미총 왼편 위쪽의 바위들은 ‘응회암(凝灰岩)’이어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바쇼가 매미 울음소리가 바위에 스며들 만하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지형이다. 봄 벚꽃, 여름 수국, 가을 국화를 좋아하는 일본인이라더니 과연 류사쿠지 계단 양편에는 진보라 수국들이 깊은 빛깔로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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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시마 해안의 절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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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쇼의 동상. |
17자로 간단하게 풍경과 사물을 배치하는 하이쿠에 비하면 쓰는 이의 주관이 깊고 길다. 사실 한국에서는 매미나 개구리 같은 활물들을 시의 소재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바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하이쿠에는 개구리가 등장한다.
“옛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로다”
한국의 선비들은 매미까지는 용인하더라도 “진지하고 단아한 시적 세계에는 맞지 않는 생물”인 개구리까지 ‘점잖은’ 시에는 받아들이지는 않았는데, 하이쿠에는 개구리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바쇼가 동북지방으로 하이쿠 기행을 떠났던 목적 중 하나는 일본 삼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쓰시마 해안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곳에 이르러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서 접한 것도 개구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우는 ‘풍경(風磬)’이었다.
바쇼가 참배했던 즈이간지 절에 들렀다가 해안으로 나왔다. 세월에 닳아 회색으로 변한 ‘고다이도’의 나무기둥이 마쓰시마의 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 시인 21명과 함께 배를 타고 마쓰시마 항구를 떠난다. 시인들은 배 위에서 다도해의 섬들처럼 올망졸망 이어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300여 년 전 일본 시인이 느꼈을 감상을 되짚었다.
시인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소유주 ‘마루분 마쓰시마 기선 주식회사’의 사토 아키오(65) 사장이 일행을 맞았다. 그는 마쓰시마에서 유람선 8척을 부리는 사람인데, 자신만큼 그곳의 바쇼 기행지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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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쇼를 울린 천년 세월의 ‘쓰보 석비’. |
- 파초에 태풍 불고/ 물대야에 빗소리/ 듣는 밤이여, 말은 터벅터벅/ 그림 속의 나를 보는/ 여름 들판, 들판의 해골을/ 생각하니 뼛속에/ 스미는 바람, 말에서 잠 깨어/ 꿈결에 달은 멀고/ 차 끓는 연기, 달 없는 그믐/ 천년 묵은 삼나무를/ 껴안는 폭풍, 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이여/ 뜨거운 서리, 죽지도 못한/ 나그네 잠끝이여/ 저무는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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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신적으로 한국 기행객을 안내한 마쓰시마 유람선 회사 사장 사토 아키오씨. |
우리는 바쇼가 갔던 먼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기행지 반에도 못 미치는 센다이에서 돌아왔지만, 물론 바쇼가 갔던 길을 모두 따라 걸어야 그의 심중을 헤아리는 건 아닐 테다. 사실 세월의 여행객, 바쇼의 허무와 쓸쓸함을 느끼기에는 그의 하이쿠 몇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나그네라고 이름을 불러주오 초겨울 가랑비” 혹은 “고향집이여 탯줄을 보고 우는 섣달 그믐달!” 같은.
마쓰시마(일본)=글·사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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