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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의 하이쿠기행 <하> 산사의 매미소리 바위에 스며드는 듯

입력 : 2010-08-18 17:18:21 수정 : 2010-08-18 1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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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 ‘매미의 소리’ 하이쿠 때문
류사쿠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마쓰시마 해안길·석비·사찰 등 300년전 시인의 여로 쫓아가니 쓸쓸한 나그네의 정한 되살아나
매미가 올여름에는 유난히 더 크게 자주 우는 것 같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2010남아공월드컵 때 등장했던 ‘부부젤라’에 빗대어 ‘매미젤라’라고 원망하면서 제발 잠 좀 자자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일본 류사쿠지(立石寺)는 매미소리 때문에, 그 소리를 하이쿠로 새긴 바쇼 때문에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으니, 매미도 장소를 가려가며 울 일이다.

◇류사쿠지(立石寺) 경내의 울창하고 높은 삼나무 숲 계단 길.
바쇼가 도쿄를 떠나 동북지방으로 하이쿠 기행을 떠난 사연은 전편에 소개했거니와 그는 야마가타 번의 영지에 이르러 “사람들이 한번 구경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권유해서” 발길을 뒤돌려 그곳에 갔는데 “참으로 청정하고 정적이 감도는 곳”이라고 기행문 ‘오쿠로 가는 작은 길’에 썼다.

과연 그 절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오른 울창한 삼나무들을 양편에 거느린 10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깊고 고요한 곳이었다. 계단의 중간쯤에 ‘매미총’이라는 한글이 함께 적힌 안내문이 서 있다. 말 그대로 ‘매미 무덤’이라는 의미인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쇼의 대표적인 하이쿠를 듣지 못했다면 이해하지 못할 명패이다. 바쇼는 절벽을 돌아 바위를 기다시피 해서 올라가 불각(佛閣)에 참배했고, 주변의 뛰어난 풍경이 적막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마음이 맑아져 가는 것만 느껴졌다고 기록했다. 그 여정에 매미가 등장했고, 1689년 5월 27일 그는 이렇게 썼다.

“적막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바쇼가 들었던 매미 울음소리도 고요한 산사를 뒤흔들 만큼의 위력을 지녔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고요한 산사이기에, 아무리 매미가 목청을 높여도 그 소리는 적막을 더 부각시킬 따름이었을 테다. 그리하여 심지어 바위 속까지 스며들 정도라는 느낌은 정작 죽은 바쇼만 모를 뿐 두고두고 남는 명구가 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매미총 왼편 위쪽의 바위들은 ‘응회암(凝灰岩)’이어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바쇼가 매미 울음소리가 바위에 스며들 만하다는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지형이다. 봄 벚꽃, 여름 수국, 가을 국화를 좋아하는 일본인이라더니 과연 류사쿠지 계단 양편에는 진보라 수국들이 깊은 빛깔로 피어 있다.

◇마쓰시마 해안의 절경.
앞에서 소개한 ‘하이쿠의 시학’에서 문학평론가 이어령은 매미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상이한 시각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한국의 선비들에게 매미는 “감각적 감상이라기보다 은둔자의 생활과 그 심정을 주장하기 위한 이념적 장치”로 활용되면서 “시인의 시선은 혹은 청각은 매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횡단할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어령이 제시하는 한국의 매미 관련 시조 한 수.

◇바쇼의 동상.
“세류(細柳) 청풍(淸風) 비갠 후(後)에 우지마라 뎌 매암아/ 꿈에나 님을 보려 겨우 든 잠을 깨우느냐/ 꿈깨야 겻헤 업스면 병(病) 되실가 우노라”(호석균)

17자로 간단하게 풍경과 사물을 배치하는 하이쿠에 비하면 쓰는 이의 주관이 깊고 길다. 사실 한국에서는 매미나 개구리 같은 활물들을 시의 소재로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바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하이쿠에는 개구리가 등장한다.

“옛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로다”

한국의 선비들은 매미까지는 용인하더라도 “진지하고 단아한 시적 세계에는 맞지 않는 생물”인 개구리까지 ‘점잖은’ 시에는 받아들이지는 않았는데, 하이쿠에는 개구리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바쇼가 동북지방으로 하이쿠 기행을 떠났던 목적 중 하나는 일본 삼대 절경 중 하나로 꼽히는 마쓰시마 해안을 보기 위함이었다. 그곳에 이르러 기념품을 파는 상점에서 접한 것도 개구리가 바람에 흔들리며 우는 ‘풍경(風磬)’이었다.

바쇼가 참배했던 즈이간지 절에 들렀다가 해안으로 나왔다. 세월에 닳아 회색으로 변한 ‘고다이도’의 나무기둥이 마쓰시마의 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사랑문화인협의회’ 시인 21명과 함께 배를 타고 마쓰시마 항구를 떠난다. 시인들은 배 위에서 다도해의 섬들처럼 올망졸망 이어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300여 년 전 일본 시인이 느꼈을 감상을 되짚었다.

시인들이 배에서 내렸을 때,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소유주 ‘마루분 마쓰시마 기선 주식회사’의 사토 아키오(65) 사장이 일행을 맞았다. 그는 마쓰시마에서 유람선 8척을 부리는 사람인데, 자신만큼 그곳의 바쇼 기행지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자부했다.

◇바쇼를 울린 천년 세월의 ‘쓰보 석비’.
아키오 사장의 안내로 ‘쓰보 석비’를 찾아갔다. 바쇼의 기행 목적 중 또 하나는 와카로 읊어진 명소들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여 그 흔적이 확실하지 않아 실망했지만 “천년의 세월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는” 쓰보 석비를 마주하고는 “그 기쁨을 참을 수가 없어 긴 여로의 피곤함도 잊은 채 감동의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고 썼다. 쓰보 석비는 724년 나라시대에 사방의 경계선을 적어 넣은 경계석이다. 바쇼가 남긴 하이쿠들을 들여다보면 그가 돌비석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고 남았을 법한 시인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파초에 태풍 불고/ 물대야에 빗소리/ 듣는 밤이여, 말은 터벅터벅/ 그림 속의 나를 보는/ 여름 들판, 들판의 해골을/ 생각하니 뼛속에/ 스미는 바람, 말에서 잠 깨어/ 꿈결에 달은 멀고/ 차 끓는 연기, 달 없는 그믐/ 천년 묵은 삼나무를/ 껴안는 폭풍, 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이여/ 뜨거운 서리, 죽지도 못한/ 나그네 잠끝이여/ 저무는 가을…

◇헌신적으로 한국 기행객을 안내한 마쓰시마 유람선 회사 사장 사토 아키오씨.
이 중에서도 지금 계절에 어울리는 ‘파초에 태풍 불고’는 바쇼가 끝내 쓸쓸한 눈물의 시인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명편 같다. 아키오 사장은 바쇼가 언급한 ‘오쿠노 호소미치’의 옛길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 좁은 길은 지금은 주택가로 변해서 일행이 타고 가는 소형 버스가 진입하기는 힘들었고, 대신 그 옆을 지날 뿐이었는데 종착지에 에둘러 도착했을 때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아키오 사장도 처음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행과 헤어지면서 함께 그 이정표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유안진 시인은 아키오 사장이 떠난 뒤 헌신적이고 점잖은 그 노인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우리는 바쇼가 갔던 먼길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기행지 반에도 못 미치는 센다이에서 돌아왔지만, 물론 바쇼가 갔던 길을 모두 따라 걸어야 그의 심중을 헤아리는 건 아닐 테다. 사실 세월의 여행객, 바쇼의 허무와 쓸쓸함을 느끼기에는 그의 하이쿠 몇 편만으로도 충분하다. “나그네라고 이름을 불러주오 초겨울 가랑비” 혹은 “고향집이여 탯줄을 보고 우는 섣달 그믐달!” 같은.

마쓰시마(일본)=글·사진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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