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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경제 반석위에 올린 주룽지와의 대화

입력 : 2010-08-14 00:01:14 수정 : 2010-08-14 0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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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판의 틀을 짠 인물로 저우언라이(周恩來)를 꼽는다면 중국 경제를 설계하고 반석 위에 올린 인물은 주룽지(朱鎔基·82)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밑그림을 현실화한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 사람들은 특히 공산당식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를 조화롭게 만든 인물로 주룽지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중국이 정치적 자유의 욕구에 휘말려 얼마 못 갈 것이라는 서방 측의 희망 섞인 전망은 주룽지라는 인물로 인해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서방식 잣대로는 도저히 풀이할 수 없는 중국식 정경 체제는 사실상 주룽지라는 인물에 의해 구체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민출판사 엮음/강영매·황선영 옮김/범우/1만9000원
주룽지, 기자에 답하다/인민출판사 엮음/강영매·황선영 옮김/범우/1만9000원


중국 인민출판사가 출간한 ‘주룽지, 기자에 답하다’는 그런 주룽지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기자와의 문답 또는 미국 등 서방 측 주요 인물들과의 대화 내용을 수록한 이 책은 그에 대한 찬양과 칭송 일색으로 돼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문답 가운데는 때로 주룽지의 논리 빈약도 엿보이지만, 조국인 중국을 세계 강대국 반열에 올려 놓으려는 강직하고 진솔한 측면도 가감 없이 드러난다.

1999년 4월2일 월스트리트저널 피터 칸 발행인과의 인터뷰를 보자. 피터 칸은 “미국인들은 최근 반세기 동안 1989년 탱크 앞에 서 있던 젊은이의 사진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총리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용감한 것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잘못 알려진 게 있다면 말해 달라”고 물었다.

주 전 총리의 주저 없는 답변이 이어졌다. “그 사진은 당초 미국과 기타 국가의 영화와 TV에 자주 나왔다. 최근에는 자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줬던 또 다른 사진 한 장이 있다. 바로 베트남의 한 소녀가 벌거벗은 채 미군기의 폭격을 피해 도망치는 사진이다. 그 소녀는 현재 미국에 있다. 나는 이런 유의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일은 근본이 다르다. 탱크와 맞섰던 사람을 결코 깔아뭉개지는 않았다. (탱크는) 그를 피해갔다.” 미국인들 입장에선 가슴 뜨끔해지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1999년 3월15일 전인대 기자회견장에서 대만 기자가 중국의 인권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주 전 총리의 명쾌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최근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내가 인권 보장과 쟁취 운동에 참가한 역사는 당신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덩샤오핑이 오늘의 중국 경제 청사진을 그렸다면 주룽지는 청사진대로 실행에 옮겨 오늘의 중국 경제를 이룩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자 그녀는 ‘그래요?’라며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난 당신보다 나이가 열 살 더 많다. 당시 나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당 정권을 상대로 중국의 민주·자유·인권 쟁취 운동에 참가했다. 당신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였다’고 답했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봉건사회였고, 반봉건·반식민지의 역사도 겪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지 5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50년으로 어떻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나?” 주 전 총리의 답변 기교가 돋보이는 내용이다.

주룽지 전 총리는 공산당원이었지만 강직하고 인민을 위해 살았던 저우언라이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그렇듯이 그는 정치 풍향에 따라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엄격한 일처리로 ‘포청천’ ‘경제 차르’ 등으로 불린다. 중국의 힘이 과연 어디서 나오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전성홍 편저/에버리치홀딩스/2만8000원
체제전환의 중국정치/전성홍 편저/에버리치홀딩스/2만8000원


이 책이 주 전 총리 개인을 통해 중국 정치·경제의 단면을 살폈다면, 서강대 정외과 전성홍 교수가 쓴 ‘체제 전환의 중국정치’는 중국이 서방 측의 희망대로 체제가 변화할 수 있는지를 짚었다.

저자는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국의 부상을 보다 앞당겼다고 풀이했다. 중국이 경제적 도약을 준비하던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G2’란 용어는 생소했다. 초강대국 미국을 넘볼 세력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중국이 미국에 대적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50년 후, 10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주류였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서방의 많은 지도자들이 희망하는 대로 경제적 풍요가 정치적 자유의 욕구를 분출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저자는 중국 정치체제 변화와 관련해 ‘얼마나 변했는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변하고 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중국 지도자들은 공산당이라는 일당체제 자체의 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기존 체제의 단점을 개선하면서 시장경제 도입에 따른 통치기반 약화를 보완하는 쪽으로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 3월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의장단석에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 총리(오른쪽)가 나란히 앉아 있다.
다시 말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기존 관행을 타파하고 국가의 통치행위가 법과 규범에 의해 집행되도록 ‘당내 민주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화민족주의, 유교적 전통 문화와 사상 등 복수의 이데올로기가 가미된 체제를 추구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집단지도체제를 새로운 통치기제로 확립하고 세대교체의 형식을 통해 순조로운 권력이양을 진행 중이라고 저자는 평가한다.

정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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