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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거인’ 하이데거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

입력 : 2010-07-30 17:27:09 수정 : 2010-07-30 17: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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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란 무엇인가.’ 2000년 전 유대 법정에서 본디오 빌라도의 이런 물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침묵했다. 기독교 성인의 침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손쉬운 해석은 이렇다. 빌라도의 진리에 대한 물음은 예수가 처한 상황에서 대응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가정을 들어보자. 뉘른베르크 2차대전 전범 재판정에서 재판관이 마틴 하이데거(1889∼1976·20세기 독일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아마 그는 침묵했거나 혹은 그런 문제를 논할 만한 곳이 못 된다고 답했을 것이다. 진리란 늘 사유와 존재를 수반한다. 존재란 있는 것 그 자체이며 사실이다. 그러므로 진리와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하이데거 존재론의 출발점이다.

이수정 지음/생각의 나무/3만원
하이데거―그의 물음들을 묻는다/이수정 지음/생각의 나무/3만원


한국 하이데거 연구의 대가 이수정 교수가 현대철학의 거장 하이데거의 사상을 우리 정서로 해석해낸 역작을 선보였다. 저자는 “사유의 거인들이 사라져간 시대에 하이데거를 다시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미 하이데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를 예언했다. 그에게서 다시 묻고 물음으로써 현대문명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지적한다. “철학적 사고의 빈곤과 인문학의 위기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한국적 상황에서 굳이 하이데거를 다시 탐독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독일인 사이에서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과연 언제쯤 독일어로 번역이 이루어질까 하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하이데거는 어렵다. 하이데거의 철학이 난해한 것은 그가 갈파한 진리와 존재를 설명하는 용어의 생경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현대에 이르러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철학적 흐름은 하이데거의 영향을 빼놓고선 논할 수 없다”

크로스오버 하이데거/이승종 지음/생각의 나무/2만5000원
그는 “하이데거가 전하는 메시지는 존재의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현장에서 지구 파멸의 사건이 인간에 의하여 벌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이제 새로운 존재의 시각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현대가 필요로 하는 존재의 시각을 찾는 과제가, 바로 하이데거 철학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최대의 화두이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따라서 지금의 세계사적 문제, 지구촌적 문제에 한국적인 철학적 대응의 지평에서 하이데거 연구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다”고 갈파한다.

이승종 지음/생각의 나무/2만5000원
크로스오버 하이데거/이승종 지음/생각의 나무/2만5000원

이 교수의 저서는 하이데거 철학에서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에 대한 저자의 기나긴 사색이 밴 여정을 담아냈다. 그는 하이데거의 원전을 보다 충실하게 읽어내려 애썼다. 저자는 “우리 후학들이 그를 충실히 뒤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그를 따라서, 그와 함께, 그를 넘어서 사유를 펼쳐보는 것은 현대 문명에 고민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로 남는다”고 했다.

이 책이 하이데거 강의 노트를 중심으로, 독일의 하이데거를 한국의 하이데거로 풀어내고 읽어낸 작업의 결실이라면 연세대학교 이승종 교수가 쓴 ‘크로스 오버 하이데거’는 독창적인 하이데거 연구서라 할 만하다.

이 교수는 분석철학에서 배운 과학정신과 논리적 기법을 동원, 독일의 지적 전통을 크로스오버시켜 하이데거의 사유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이 책에 응축해 놓았다.

그는 하이데거를 축으로 해서 서구문명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대륙과 영·미라는 두 문명권 사이의 유익한 대화를 시도했다. 이로서 언어철학, 심리철학, 인지과학, 수리논리학, 과학철학, 기술철학 등 현대 영·미철학의 중심 담론들을 재조명한다. 특히 하이데거의 스승 ‘후설’과의 사상적 불화, 동년배인 비트겐슈타인과의 유사성과 차이성 등을 더듬어 가며 하이데거의 색다른 면을 도려내는 노련한 솜씨를 선보인다.

◇독일의 신존주의 대철학자인 하이데거가 집 뒤의 오솔길을 생각에 잠긴 듯 거닐고 있다.
생각의 나무 제공
이 교수는 책에서 존재 언어 기술 등 하이데거 사유의 핵심적인 단어들을 포괄적인 관점에서 해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의 저서는 분석철학적 명쾌함과 신선함을, 다른 한편으로는 서양의 하이데거 전공자가 읽더라도 공명할 만한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일반 독자가 하이데거 철학에 동의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철학에 대한 자신의 주체적인 사유를 시도했다.

특히 이 교수는 소통 부재의 시대에 색다른 소통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소통이 끊긴 유럽철학과 영·미철학을 통합의 장으로 끌어들여 하이데거를 논하고 있다. 저자가 책 제목을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라고 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어 소통시키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망각했던 철학과 인문학의 본연의 모습을 부활시키려 애썼다. 아울러 20세기 실존주의 대표자로 손꼽히는 독일 철학자인 하이데거를 통해 현대문명의 갈 길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판매 수익금을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서문에서 밝혀 철학자의 소박한 성품을 엿보게 한다.

정승욱 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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