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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운명, 美 대통령 결단에 달렸다

입력 : 2010-07-23 17:27:53 수정 : 2010-07-23 17: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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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워싱턴 등 18명의 잘못된 정책 분석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이 관용 어구는 미국 서부 개척시대에 포커 게임을 할 때 딜러 앞에 손잡이가 사슴 뿔로 된 칼(buckhorn knife)을 놓아두었던 관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문구가 세계에서 유명해진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고독한 결정 가운데 하나인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던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백악관 집무실에 써놓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그의 결단은 한 국가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고, 번영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의 결정은 한 국가뿐 아니라 세계를 파멸로 이끌 수도, 번영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을 수도, 거꾸로 흐르게 할 수도 있다. 그의 결단에 국가와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다. 그런 대통령이 만약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린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토머스 J 크라우프웰·M 윌리엄 펠프스 지음/채은진 옮김/말글빛냄/2만9000원
대통령의 오판/토머스 J 크라우프웰·M 윌리엄 펠프스 지음/채은진 옮김/말글빛냄/2만9000원


‘대통령의 오판’은 미국 건국 이후 역대 대통령들의 잘못된 의사 결정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처음에는 희망적으로 보였던 정책이나 방침이 결과적으로 어떻게 최악의 선택이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인 칼럼니스트 토머스 J 크라우프웰과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M 윌리엄 펠프스는 미국 대통령 18명의 잘못된 정책이 어떻게 미국 역사를 바꾸어 놓았고,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꾸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분석대상 정책은 미 자유민주주주의 정신에 큰 오점을 남긴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베트남전 발발의 전초가 된 린든 존슨의 통킹만 사건 오판, 리처드 닉슨의 캄보디아 폭격, 지미 카터의 이란인질 구출 작전 등 미국은 물론 세계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20개의 정책이다.

위대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대통령들도 잘못된 정책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독립영웅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예외는 아니다. 워싱턴은 독립전쟁이 끝난 후 막대한 지방 정부의 부채를 청산하기 위한 재원을 얻기 위해 위스키에 세금을 물게 했다. 위스키 과세는 3년에 걸친 서민 폭동을 초래했고, 결과는 워싱턴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고 연방주의자들을 몰락시켰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조지 워싱턴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역시 ‘출항 금지법’을 제정했다가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명성에 금이 갔다. 제퍼슨은 1807년 전쟁 중인 영국과 프랑스가 공해상에서 미국 선박과 선원들을 억류해 문제를 일으키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출항금지법을 제정했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일방적인 법 제정은 예기치 않은 문제를 일으켰다. 3만명의 선원이 일자리를 잃었고, 명문 상인 집안이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등 전국적인 경제 불황이 닥쳤다. 제퍼슨은 미국인들이 어떤 경제적 어려움도 애국심으로 참고 견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국민에게 출항금지법을 시행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퍼슨은 단 한 번도 이 정책에 대해 공개서한을 발표하거나 의회에 교서를 보낸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소통 부재’였다. 역사학자 메릴 피터슨은 이 사건을 ‘리더십의 치명적인 실패’라고 표현했다.

◇존 F. 케네디                                                          ◇조지 W. 부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잘 대처해 파멸위기 직전의 세계를 구해낸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러한 관점을 인정하더라도 미사일 위기에 앞서 일어난 ‘피그스만 침공’ 당시 케네디가 잘못된 판단으로 미사일 위기를 초래했다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미국은 1961년 4월 쿠바 출신 망명자 1300명을 동원해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쿠바 남부 피그스만을 침공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68명이 목숨을 잃고 1200여명이 포로가 됐다. 아이젠하워 정부에서 계획됐던 이 작전이 실패한 것은 처음부터 이 작전을 내키지 않아 했던 케네디의 미온적이고 소극적인 태도에도 한 원인이 있었다고 저자들은 분석했다. 피그스만 침공 실패를 케네디의 미숙함과 나약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판단한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은 쿠바에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설치, 미사일 위기를 촉발시켰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이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 이라크 침공은 수십만 명의 이라크인과 수천 명의 미군이 희생되는 비극을 초래했고, 이 비극은 아직 진행 중이다. 당시 미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내가 입수했던 정보는 부정확한 것으로 판명됐으며, 이 사실은 나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홍성일 기자 hongs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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