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여회 조작… 경매사가 뇌물받고 영농보상 목적 허위 판매도 #1.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경매사인 장모(41)씨는 지난해 말 옥수수 경매가 시작되자 전자경매시스템의 ‘Esc’ 키를 눌러 경매를 보류시켰다. 경매는 곧 수지식(손가락을 이용해 경매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재개됐다.
이른바 ‘밭떼기’ 업자인 출하주가 높은 가격을 받도록 해주기 위한 조작극이었다. 해당 옥수수는 응찰가(상자당 약 2700원)의 2배가 넘는 5700원에 낙찰돼 한 중도매인에게 넘어갔다.
중도매인의 손실은 개별적으로 출하한 농민들의 농산물 낙찰가를 반값 이하로 후려쳐 보상해 줬다. 장씨는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이런 식으로 2857회나 경매가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2. 버섯재배업자인 이모(49)씨는 서울 강남구 한 개발예정지에 약 100㎡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고 투자자 약 200여명을 끌어모았다. 이씨는 ‘영농인 자격으로 투자금의 3∼5배 보상을 받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한 뒤 1인당 1250만∼1700만원을 받아 20억원 이상을 챙겼다.
이씨는 출하하지도 않은 표고버섯을 출하한 것으로 허위위탁 판매하거나 자신이 생산한 버섯을 투자자 명의로 출하했다. 경매사에겐 2300여만원의 뇌물을 건네 입을 막았다. 영농보상 목적의 허위위탁 판매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농민 등쳐 먹은 가락시장=소문만 무성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20일 경매가를 조작하거나 하지도 않은 경매를 진행한 것처럼 꾸민 혐의(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장씨 등 가락시장 내 도매법인 경매사 4명과 이들에게 가짜 경매를 부탁한 혐의(뇌물공여 등)로 농산물 유통업자 고모(47)씨 등 6명을 구속기소하고 27명을 불구속기소하거나 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적발된 경매사 가운데 장씨 등 4명은 전자경매시스템 작동을 마음대로 멈추고 낙찰가를 제멋대로 정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장씨 등은 농산물을 대량으로 출하하는 밭떼기 업자들을 경매에 참여시켜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이 같은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농민이 출하한 농산물은 경매가를 낮게 조작해 중도매인 손실을 보전해 줬다. 박지영 검사는 “조작된 낙찰가는 정상가격과 평균 30%, 크게는 2배까지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염모(40)씨 등 나머지 경매사들은 영농보상이나 금융 편의를 노린 이씨 등 업자들의 부탁을 받고 있지도 않은 버섯과 부추 등을 허위로 상장해 물품대금을 주고받았다. 업자들은 도매시장법인이 내주는 정산서가 토지보상 시 실소득 입증자료로 인정되는 점을 악용해 보상금을 타내려고 허위 경매를 의뢰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도매법인은 급전이 필요한 업자에게 물품 거래도 없이 출하대금을 주는 방식으로 돈을 빌려줘 낙찰금액의 4%인 위탁수수료를 ‘대출이자’로 받는 행태도 적발됐다.
◆경매 공영제, 농산물 추적제 도입해야=전문가들은 경매사 공영제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매사가 사기업인 도매시장법인에 속해 있다 보니 실적 독촉에 시달려 불법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허위 출하를 막기 위해 농산물 이력제를 확립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수입농산물의 경우 수입 증명자료만 첨부하도록 돼 있어도 허위상장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이번에 적발된 영농보상 목적의 허위위탁 판매를 막기 위해선 도매시장법인 정산서를 실소득 입증자료로 적시한 국토해양부 고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서울시는 이날 중도매인의 점포 전대 등 위법 행위에 대해 행정처분을 강화키로 했으며, 농산물 이력 추적제와 경매사 공영제 도입 등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유통비리 | ||
유 형 | 피의자 | 주요 혐의 |
경매가 조작 | 장모(41·경매사)씨 등 2명 | 최대 2857회에 걸쳐 경매가 조작 등 |
허위위탁 판매 (영농보상 목적) |
이모(49·버섯재배업)씨 등 4명 | 약 1018회에 걸쳐 버섯 허위위탁 의뢰, 그 대가로 경매사 등에게 2300만원 상당 뇌물 공여 |
허위위탁 판매 (금융편의 목적) |
고모(47·수입과일출하업)씨 등 3명 | 수입과일 57억5000만원 상당을 허위위탁 의뢰, 청과법인에 3억2000만원 상당 뇌물공여 |
중도매인 명의대여 |
김모(42·경매사)씨 등 2명 | 중도매인 명의 대여를 알선, 중도매인 아닌 자에게 10억원 상당의 당근 낙찰 |
중도매인 조합관련 비리 |
한모(65·농산물수집상)씨 | 중도매인 점포 이전 청탁명목 등으로 5900만원 수수 |
자료:서울동부지방검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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