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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나 첫 소설집 ‘칼’

입력 : 2010-07-16 22:16:07 수정 : 2010-07-16 22: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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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 자 극속 금방 부서질것 같은 불안감…
결핍과 상처, 배신과 견딤의 서사‘빼곡’
김규나(42)의 첫 소설집 ‘칼’(뿔)은 우선 표지가 아주 도발적이어서 단박에 눈길을 끈다. 표지에는 코발트블루 빛깔의 짧은 원피스 차림 여자가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깊숙이 드러낸 채 환한 창가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관능을 자극하는 한편으로 금방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표지가 예고하는 것처럼 단편소설 11편이 수록된 이 소설집에는 결핍과 상처, 배신과 견딤의 서사들이 빼곡하게 흘러간다.

◇첫 소설집을 펴낸 김규나씨. 그는 “소설을 쓰기 전에는 내가 왜 이 세상에 온 것인지 정말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어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소설집 제목으로 뽑은 표제작 ‘칼’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시체를 부검하는 여자인 ‘나’와 부검 대상으로 누워 있는 ‘당신’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상황 설정 자체가 강력한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여자와 남자는 불과 며칠 전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나 하룻밤을 보낸 사이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이 지닌 결핍과 상처의 무게는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는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정기연주회 중간에 남자의 바이올린 현이 끊어져 버렸다. 그보다 2주 전에는 이미 생의 첫 번째 줄이 끊어진 터였다. 평소 삶을 완벽하게 조율하면서 산다고 믿었던 남자이기에 그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을 테다. 아내가 답답함을 호소하며 다른 남자를 구한 뒤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현을 조율하는 일보다 생을 조율하는 일이 훨씬 더 난해하고 힘든 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여자의 아버지는 의료사고를 낸 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요양소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그녀의 어머니는 이미 어렸을 때 부녀 곁을 떠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치부되는 대상이다. “가죽을 벗겨낸 들짐승처럼” 아버지는 “사랑과 용서, 희망과 동정, 심지어 위선 허세조차” 놓아버렸다. 여자가 어렵사리 의사가 되어 굳이 사체를 부검하는 일을 자원한 이유도 아버지의 상처 때문이었다. 이들 두 남녀가 결핍과 상처를 메우는 방식은 뜨겁게 죽을 듯이 서로 몸을 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갈증을 더 깊게 만드는 찰나의 허망한 몸짓임을 그들도 모르진 않았다.

‘차가운 손’에도 역시 죽은 남자가 등장한다. 그 남자는 죽어서 여자 주변을 끈질기게 라벤더 향기로 따라다닌다. 2년 전 5개월 동안 같은 회사, 서로 다른 부서에 근무했을 뿐인 남자. 그는 어느 날 새벽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뒤늦게 그의 아내가 여자를 찾아와 남자가 남겨둔 메모지와 사진을 던지며 여자 때문에 남편이 죽었노라고 악다구니를 퍼붓는다. 여자는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남자를 만나기 전부터 간간이 메모 된 그녀의 이름을 목격하면서 그 남자가 운명적인 사랑이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후 그 남자는 향기로 여자 주변을 맴돌지만, 그 운명적인 사랑이란 여자의 야무진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여자만 모를 뿐이다. 이 같은 ‘생의 덫’은 김규나 소설 도처에서 운명을 조롱한다.

‘내 남자의 꿈’에 등장하는 남녀도 덫에 걸린 무기력한 존재들이긴 마찬가지다. 이혼 후 칩거하며 살던 여자가 겉으론 다 가졌지만 기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남자와 만난다. 그들의 육체적 만남은 찰나의 위안을 주지만 서로 빈 곳을 채워줄 수 없다. 이번 소설집에는 이 밖에도 ‘달 컴포지션 7’, ‘뿌따뽕빠리의 귀환’, ‘코카스칵티를 위한 플롤로그’, ‘거울의 방’, ‘북어’, ‘테트리스 2009’, ‘퍼플레인’, ‘바이칼에 길을 묻다’ 등이 수록됐다. 정교한 문장과 깊은 정한이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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