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배꼽 감추라’ 속담까지
‘게릴라 뇌우’ 스트레스 시달린
열악한 기후속 민중의 삶 느껴져
“벼락이 네 배꼽을 노리고 있으니 꽁꽁 숨겨라.”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 벼락은 윗도리를 제대로 걸치지 않은 아이들의 배꼽 위에 떨어지니 날이 수상해질 것 같으면 옷을 제대로 입어서 배꼽을 감추라는 속담이다. 그러고 보면 벼락감투, 벼락공부처럼 빠른 것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게 한국의 벼락인데 일본의 벼락은 아이들의 배꼽을 노리는 잔인한 벼락이었다. 불(火), 지진(地震), 아버지(父)와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로 벼락(雷)이다. 일본의 벼락은 특히 태풍이 온 나라를 뒤덮으며 호우(豪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름의 열도 하늘을 지배하는 폭군으로 악명이 높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 벼락은 윗도리를 제대로 걸치지 않은 아이들의 배꼽 위에 떨어지니 날이 수상해질 것 같으면 옷을 제대로 입어서 배꼽을 감추라는 속담이다. 그러고 보면 벼락감투, 벼락공부처럼 빠른 것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게 한국의 벼락인데 일본의 벼락은 아이들의 배꼽을 노리는 잔인한 벼락이었다. 불(火), 지진(地震), 아버지(父)와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바로 벼락(雷)이다. 일본의 벼락은 특히 태풍이 온 나라를 뒤덮으며 호우(豪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여름의 열도 하늘을 지배하는 폭군으로 악명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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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아사쿠사의 센소지(淺草寺) 남쪽에 자리잡은 카미나리몬(雷門)의 전경. 뇌문(雷門)이라고 쓰여진 거대한 제등의 왼쪽에 자리한 조형물이 뇌신(雷神)에 해당하는 벼락 신상이며 오른쪽에 있는 것은 풍신(風神)이다. |
역사적으로 볼 때, 고대 일본에서는 구름 위에 벼락 신이 여럿 있어 일제히 큰 북을 울리며 번개를 내리꽂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어김없이 비구름이 몰려와 무더운 여름날의 기온이 뚝 떨어지곤 했다. 이 때문에 배를 드러내고 바깥에서 놀던 아이들이 배탈 날 가능성이 커 하늘이 수상해지기 시작하면 윗옷을 잘 걸치라는 의미에서 ‘배꼽을 감추라’는 속담이 탄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물론 이 속담과 관련해서는 자세를 높이 하면 번개에 맞기 쉬우므로 몸을 낮추고 다니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배꼽을 감추는 가장 좋은 방법이 허리를 구부리며 자세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 간에 중요한 사실은 예로부터 열도의 벼락이 여타 국가의 벼락처럼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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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TV의 기상예보 방송에서 벼락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벼락이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하는 여름이 되면 TV에서는 호우 및 태풍 경보와 함께 벼락에 대한 정보 또한 상세하게 제공하기 시작한다. |
1001개의 관음상이 관광객들을 맞이하는 사찰로 더욱 유명한 교토의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 역시 내부에 장식된 수많은 목상 가운데 풍신(風神)과 더불어 뇌신(雷神)이 등장한다. 이곳의 벼락 신은 12세기 초, 고시라가와 법황에 의해 창건돼 현재는 국보로 지정돼 있는 산쥬산겐도를 벼락으로부터 지켜내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도쿄 아사쿠사 지역의 가미나리몬(雷門) 역시 세계 최악의 기후조건을 지닌 일본인들의 벼락 스트레스를 웅변해 주고 있다. 무게만 600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제등을 단 가미나리몬은 오늘날 아사쿠사에 있는 센소지(?草寺)를 벼락으로부터 굳건히 지키고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돌이켜 보면 벼락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원시적인 신앙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일발필도(一發必倒)의 위력을 지녔기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감히 맞설 수 없는 초월자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믿어져 온 것이 벼락이었다. 그런 벼락이 횡행하는 곳에서는 자연히 토테미즘이 구원의 종교로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혹독한 기후를 지닌 북유럽에서 천둥과 번개의 신, 토르가 극진하게 숭배돼 온 것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지중해가 주무대인 그리스신화 속의 번개는 날마다 애정행각을 벌이기에 바빴던 제우스의 반쪽짜리 무기에 불과했지만, 북유럽신화 속의 벼락은 신들 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토르’의 치명적인 최종 병기였던 것이다. 그런 벼락 신에 대한 두려움이 바이킹을 통해 유럽 대륙 깊숙이 전파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사회는 그 흔적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목요일인 더스데이(Thursday)가 기실, 토르라는 이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 역시 천둥 번개와 관련된 미신을 오랫동안 믿어왔다. 천둥 번개를 일으킨다는 ‘선더버드’라는 전설 속의 새가 바로 그것으로, ‘선더버드’는 오늘날 미 공군의 세계적인 특수비행팀 이름으로 계속 전설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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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벼락이 건물로 직접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옥상에 설치하는 일본의 피뢰침들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튼튼하다. 사진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는 도쿄 시내 어느 빌딩가의 옥상 모습. 무수히 들어선 거대한 피뢰침들이 인상적이다. |
기상 학적으로 보면, 고온 다습한 상승 기류가 대기 상단의 찬 공기와 부딪치면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 벼락이다. 문제는 일본이 태평양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여름 내내 고온 다습한 공기를 품고 있는 상태에서 시베리아 벌판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부딪치는 장소에 절묘하게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인해 국지적으로도 갑작스레 상승 기류가 생기기 쉽다 보니 벼락이 치기에는 세계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인공위성과 열도 곳곳을 커버하는 1300여개의 기상 관측소로도 잡아내지 못하는 ‘게릴라 뇌우(雷雨)’가 여름 피서객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 열도의 현실이다.
주로 7, 8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이러한 게릴라 뇌우는 올 들어서만도 작년보다 30% 이상 늘어나 민중의 근심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홋카이도의 경우는 올 여름 들어 540회 정도, 시즈오카 현은 500번 정도, 히로시마 현은 480번 정도 번개가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벼락 출몰의 예상 기간이 대략 여름 석 달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매일 5∼6번 정도는 해당 지역에 벼락이 내리친다는 계산이다.
번개가 잦으면 땅이 비옥해져 오히려 풍년이 든다며 좋아한 게 우리네 속담이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치는 여름 번개에 배꼽 감추기 급급했던 열도의 삶이 더욱 슬프게 와 닿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안타까움일까?
심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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