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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문계 고등학교(Gymnasium)의 모습 |
지금이야 달라졌지만 대학만 들어가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형통하게 되는 것처럼 들어왔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때가 과거에는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자녀가 있는 한국의 가정에선 식구 모두가 수험생이 된다. 숨죽이며 노심초사 그렇게 자녀를 위한 미래를 준비한다. 어느 학부형은 자녀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힘들긴 하였어도 자식과 한 마음이 되었던 그 때가 행복하였다.”라고….
스스로가 대입 준비생인양 11학년(고등학교 2학년)의 학생을 둔 학부형인 우리는 한 달 반이나 되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미리부터 걱정이다. 여름 학기가 새 학년의 시작이기에 방학이 지나면 고등하교 3학년이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독일은 학제가 바뀌고 있는 중이다. 일부에선 이미 12학년에 졸업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아직 13학년이 되어야 졸업을 한다. 그래서 억울하단다. 하지만 억울하게 생각하는 만큼 한국의 수험생처럼 공부에 애착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학부형인 우리에겐 그것이 문제다. 독일이라고 대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한국의 고등학생들과 독일의 고등학생들의 생각과 현실은 너무도 다르다. 이곳의 고등학교 학생은 입시 준비를 하는 학생이 아니라, 극히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학생일 뿐이다. 그래서 여름방학일지라도 책이 없어 공부보다는 식구들이랑 휴가도 떠나고 친구도 만나고 그렇게 보낸다. 독일 문화에 젖어 있는 아이와 아직도 한국적 사고에 잡혀있는 아빠랑 하나의 생각이 되기를 기대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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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의 자유분방해 보이는 모습 |
어느 날 한국에서 배웠던 구구단을 외워 보라고 하였다. 아이는 “어차피 계산기 사용할 텐데 왜 구구단이 필요해요?” 라고 도리어 반문이다. 계산기를 사용함은 물론, 수학공식이나 화학코드가 있는 책을 보면서 시험을 치니 별 필요를 느끼지 못할지 모른다. 언젠가 한국에서 근방 온 어머니의 이런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아이는 책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엉망으로 나왔다”라고. “외국인이라 차별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공부를 가르치는 방법과 공부를 하는 방법이 다르다. 물론 성적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다르다. 우리 역시 꽤나 오래 살았다. 그럼에도 머리로 알고 있고 이해는 하지만 아직도 내 것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와 대화를 하며 그리고 아이의 삶을 보며 느낀다.
여름방학이다. 한국의 수험생들에겐 방학이 더 바쁘다. 하지만 독일의 여름 방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일반적으로 학원도 방학 때는 문을 닫는다. 학원의 선생도 사람이기에 쉬어야 하나보다. 즐기기 위해서 일하지 돈을 모우거나 고생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주마다 다르고 학교마다 다르다. 아니 한 학교라 할지라도 반마다 다르기도 하다. 7월이 시작되면서 방학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11학년) 수험생인 아이의 방학은 벌써 이주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지급받아서 공부하던 교과서를 이미 2주 전에 반납하였기 때문이다. 교과서 없이 수업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수영장으로, 아이스크림 카페로, 극장으로 공부는커녕 할 일 없어 전전하는 것 같은 모습이 고2의 학생을 둔 한국의 학부형인 내게는 그리 곱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이방인의 생각으로만 존재 할 뿐이다.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기에 지극히 정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가진 거성들을 배출시킨 나라다.
아이는 6여 년 동안 온갖 춤을 다 배워놓고도 모지라는지, 얼마 전부터 부루스를 시작하였다. 이유인 즉 졸업파티에서 처음 춘단다. 그래서 이 번 여름 방학 때는 아빠한테 빌려서 준 학원비를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아야 한단다. 독일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한국 아빠의 마음은 그 놈의 돈 안 갚아도 되니까 방학동안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하길 바라는데 이해가 가지 않는지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갈등이 남는다. 독일 정서 속의 아이와 한국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와 어떻게 절충하며 하나 되는 길을 찾아야 할지 고민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야 하고, 또 믿는다. 밤낮이 없이 공부에만 매달리는 한국 학생의 여름이 기억에 생생하지만 공부보다 자신을 찾는 일에 더 열심인 독일의 젊은이들을 보며 독일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미지의 세계를 익히려고 노력한다. 우리 아이라서가 아니라, 바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야 말로 나름대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 해 나가니까.
독일은 ‘학생들의 천국’이란 말이 실감이 난다.
민형석 독일통신원 sky8291@yahoo.co.kr 블로그 http://blog.daum.net/germany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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