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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60돌 ] ② 이산가족 과거·현재·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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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14 17:09:52 수정 : 2010-06-14 17: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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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갈 날만 기다리다… 하얗게 샌 머리·까맣게 탄 가슴
#1 함경남도 여흥 출신인 유희명(79)씨는 16세에 고향을 떠나온 뒤 부모와 형제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다. 유씨는 일찌감치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상봉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기다리라”는 답변만 듣고 있다. 유씨는 이제 고향 방문을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나이 80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생전에 고향 방문이 가능하겠느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2 2006년 북에 있는 아버지를 만난 김차남(68·여)씨는 상봉의 기쁨보다 이후의 후유증이 더 크다. 김씨는 “처음 만난 아버지여서 실감이 안 났는데 며칠 만나니 ‘핏줄은 당긴다’는 말을 실감했다”며 “하지만 상봉 이후 연락조차 안 되니 더 답답하고 안 만나느니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씁쓸해 했다. 김씨는 특히 “아버지를 만나고 온 뒤로는 북한 문제가 나오면 마음이 안 좋아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1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60년째 이어지고 있다.  

남과 북이 비준한 ‘전시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 제4협약’ 제26조는 ‘이산가족 재회목적 조회에 대한 충돌 당사국의 편의제공 의무 및 상호연결 회복 장려’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산가족들은 정치적 논리에 희생돼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이산가족이 고령인 점을 감안해 가족 상봉을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봉·생사 확인 고작 2만여명뿐=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생사 확인이 이뤄진 때는 195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한은 ‘실향사민 실태조사’를 벌여 7034명의 명단을 확보해 북한에 통보했다. 북한 측은 300여명이 생존해 있다는 결과를 보내왔지만 상봉은 이뤄지지 않았다.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이 성사됐지만 실질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 6·15공동선언으로 그 결실을 맺었다.

2000년 8월15일 이산가족 1차 상봉이 이뤄진 후 지난해 9월 17차 상봉까지 대면상봉을 통해 총 1만7100명이 그리운 가족을 만났다. 2005년 8월 시작된 화상상봉은 7차례에 걸쳐 557가족 총 3478명이 상봉했다. 

생사주소확인은 2001년 2번에 걸쳐 진행돼 2267명이 이를 확인했고, 총 679명이 편지를 주고받았다.

◆고령자 많은데 상봉 횟수 너무 적어=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1988년∼올해 3월말까지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신청자는 12만8111명이다. 이 가운데 30%에 달하는 4만3305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다. 생존자들도 90세 이상이 5.8%, 89∼80세 35.3%, 79∼70세 36.4% 등 고령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는 상봉횟수가 너무 적다는데 있다. 전문가들은 2007년 10·4남북공동선언에 따라 매년 4차례씩 상봉행사를 해도 90세 이상의 신청자가 모두 상봉하는데만 10여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신청자도 전체 이산가족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1952년말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서 조사한 ‘피난인 수용 상황’ 자료에 따르면 월남 피난민만 68만명이었다. 월북 피난민까지 포함하면 피난민 당사자의 수는 120여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상당수 이산가족, 특히 월북자가 있는 가족은 불이익 등을 감안해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치와 안보에 발목 잡힌 상봉=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외풍’을 많이 탔다. 2000년 첫 상봉 이후 2002년 2차 북핵 사태, 2004년 탈북자 486명 대량입국, 2006년 10월 북 핵실험 등으로 5차례의 소강상태가 반복됐다. 

분단 후 처음으로 지난해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촉진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이산가족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슴을 설렜다. 이 법은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와 운영 민간교류 경비지원 이산가족 교류단체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북핵 문제와 천안함 사태로 이산가족의 이같은 기대는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이산가족 상봉 중단은 극명한 반인도적 처사이며 정부가 이산가족을 정치문제에 끌어들여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라며 “조건 없는 만남이 가능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산가족 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도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한적의 한 관계자는 “이산가족 면회소가 최근 몰수됐고, 판문점 연락관도 연결이 안 되는 등 총체적인 난국”이라며 “남북 관계가 최고 긴장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대화 분위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6·25전쟁 60주년 기획팀= 신진호·안용성·조민중·조현일·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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