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때 ‘무기’로… 진보정권도 손 못대 법원과 검찰의 탄생/문준영 지음/역사비평사/4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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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지음/역사비평사/4만5000원 |
문준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신간 ‘법원과 검찰의 탄생’을 통해 그 문제점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문 교수는 우선 졸속으로 시작된 식민지 사법제도와 현상 유지에 급급했던 해방 직후의 상황, 그리고 한국적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비판자들은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진보 정권 시절에도 손도 제대로 못댄게 검찰과 사법 권력”이라고 꼬집는다.
문 교수는 한국 사법 근대화의 기점으로 일컬은 1895년을 기점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당시 제정된 재판소구성법은 조선의 법무 고문이던 일본인이 깊이 관여했다. 이 법은 일본이 한국을 ’보호국’으로 취급하기 위한 정책의 하나였다.
당시 일제의 사법체제는 검찰 관료의 힘을 강화시킨 ‘검찰사법체제’였다. 이후 식민 강점기에 검찰제도는 개혁과는 동떨어진 더욱 강화된 모습을 보였다. 검찰에 대한 통제와 견제가 작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문제는 해방 이후에도 낙후된 검찰사법체제가 대부분 존속했다는 점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법률가 집단의 숫자가 적었고 시기적으로도 정치적 격동기인 탓에 제대로 된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사법권력과 대립했던 김병로 등 재야법률가들도 고위직에 오른 이후에는 종래 사법 제도를 고수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검찰은 식민지적 사법체제를 원용하면서 정권의 무기로 활용됐다. 그러나 지금 사법체제에 제기된 모든 문제점이 식민지적 근원을 가진 것은 아니다.
저자는 전관예우와 같은 관행은 한국의 법조가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사법시험 합격자가 적어 대부분이 판검사로 등용됐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은 대부분 ’옷을 벗는 판·검사’의 몫이었다.
이에 따라 판ㆍ검사 시절 관료법조의 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이 변호사가 되는 상황에서 전관예우가 생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사법권 독립의 수준을 넘어선다”며 “관료제의 질서와 특권구조 속에 있는 법조를 시민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로 불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사법 개혁 대안으로 대검찰청과 검찰총장제도를 폐지하는 것을 비롯,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을 객관화 구체화할 것을 바라고 있다. 아울러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특별검찰청과 특별검사가 담당하도록 하고, 검찰인사와 검찰운영에 관한 심의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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