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대에서 프랑스문학·종교학·철학을 복수전공한 금씨가 인도로 떠난 것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20대 후반 나이였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영화 속 이름 모를 인도고전무용에 단박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춤은 숨이 막힐 듯이 아름다웠습니다. 목과 가슴, 손으로 만들어 내는 조그맣지만 아름다운 움직임은 제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저건 도대체 어떤 움직임일까. 이 세상의 것으로서 어떻게 저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스리랑카 콜롬보의 불교대학원에서 공부하던 금씨는 영화 속의 춤이 오디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디시는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오리사주의 고대 힌두사원에서 발원한 신전무용으로, 사원에서 신과 혼인하여 살아가는 신전 무희들이 추던 춤이다. 인도 사원에는 항상 ‘신을 위한 댄스홀’이 별도로 마련되었고, 그곳에서 관객 없이 오로지 신만을 위해 추어지던 춤이 오디시의 원형이다.

인문학도였던 금씨는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는 홀연히 인도로 들어갔다. 기차 침대 칸에서 트렁크마저 분실한 그의 손에는 달랑 여권과 몇몇 오디시 선생의 주소뿐이었다.
“새벽 3시, 역에서 저를 맞이한 이들은 즐비하게 누워 있는 수백 명의 노숙인들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전 재산을 잃고 홀로 서서 한숨만 나왔지요. 하지만 그런 순간도 잠시, ‘기필코 이날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다음 날부터 오디시 스승들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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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무용의 핵심은 신을 향한 헌신의 마음과 해탈(구원)”이라는 금빛나씨가 인도전통무용 ‘오디시’를 추고 있다. |
현재는 오리사주 주도인 부바네스와르에 머물며 오디시의 거장인 구루 겅가더러 쁘러던과 그의 제자 네 명으로부터 지도받고 있다. 오디시를 추기에 매우 적합한 체형과 유연성 그리고 힌두 종교철학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오디시를 표현해내고 있어 스승들과 현지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금씨는 오디시를 시작한 지 만 5년 만인 지난 2월 부바네스와르에서 오디시 무용수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데뷔 공연을 가졌다. 이는 인도인들에게도 매우 드물고 어려운 무대로, 마치 외국인이 판소리 완창을 하는 것에 비견된다. 2시간의 솔로 무대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그는 현지 언론으로부터 “오디시 무용(舞)뿐 아니라 오디시 보컬(歌)과 오디시 드럼(樂)까지 준비된 무용수이자, 현지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인도인의 감성을 빼어나게 표현하는 외국인 무용수”라는 찬사를 받았다.
매년 5, 6월 한국으로 돌아와 공연을 하겠다고 밝힌 금씨는 지난해에 이어 최근에도 국립극장과 용인시여성회관에서 두 번째 단독공연을 가졌다. 공연장에는 주한 인도대사를 비롯한 각국 외교관, 무용계 인사, 인도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객석을 가득 메워 오디시를 감상했다.

공연을 마친 금씨의 얼굴은 달항아리 같았다. “오디시를 만나기 전엔 어떠한 춤도 알지 못했다”는 그는 지금도, 앞으로도 오직 오디시 속에서 자신의 별을 본다고 귀띔했다.
한국인도 외국인도 잘 발견할 수 없는 인도 부바네스와르 생활이 6년째 접어든 금씨는 현지어인 오리야어로 말하고, 인도 음식을 먹고, 인도 옷을 입고, 인도 전통문화를 배우며 살아간다. 한국에 와서도 인도 전통복장을 하고 다닌다.
“이상하게도, 인도는 처음부터 그리 낯선 곳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주 익숙하고 편안해요. 인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면서 오디시와 함께할 것입니다. 오디시를 더욱더 깊게 알고, 제 몸 깊숙하게 익히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인도와 인도예술을 사랑하는 분들을 위하여 인도 고전무용과 고전음악의 훌륭한 공연 기획과 연출을 질과 양 면에서 점차 늘려나갈 생각입니다.”
춤 이외에도 인도 철학·역사와 함께 고전어 산스크리트어, 오리야어 등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는 금씨는 아직까지 번역되지 않은 인도의 주요 고전의 번역과 오디시를 비롯한 인도무용에 대한 전문서적, 오리야어 교본 등의 책을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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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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