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천안함 46勇士' 모두 '한줌의 재'로 산화

관련이슈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사고

입력 : 2010-04-28 16:36:54 수정 : 2010-04-28 16:36:5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천안함 46용사' 가운데 시신을 찾지 못한 산화자 6명의 유품과 가장 먼저 시신이 수습된 남기훈.김태석 원사의 시신이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화장됐다.

이로써 천안함 희생장병 46명의 화장이 모두 끝났다.

◇돌아오지 못한 수병 6인..유품으로 화장 = 이날 오전 하늘도 눈물을 흘리듯 비가 추적추적 내린 경기 수원 연화장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산화자들의 화장식이 유족들의 오열 속에 열렸다.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산화자들은 고인의 머리카락과 손톱, 해군 정복과 유품을 화장해 장례를 치르게 됐다.

강태민 상병과 정태준 일병, 장진선 중사, 이창기 준위, 최한권 원사, 박경수 상사의 유품을 담은 관이 오전 운구차량에 실려 연화장에 도착했다.

운구차량이 열리고 관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간 고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지쳐버린 어머니와 부인들은 아들, 남편을 마지막으로 부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풀려버린 다리로 여성 군의관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거리며 운구차량까지 걸어온 정 일병의 어머니는 "얼굴도 못 보고..만져보지도 못하고.."라며 실신하고 다시 일어났다가 또 실신하길 반복했다.

이창기 준위의 부인도 조용히 흐느끼며 서 있다 남편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자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준위의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군번 인식표를 손에 꼭 쥔 채 탈진한 어머니를 부축하며 눈물을 끝까지 꾹 참아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제2연평해전에서 다치고도 천안함에 다시 승선했다 산화한 박경수 상사의 부인은 한참 동안 관에 얼굴을 파묻고 "가영 아빠. 우리 가영이는 어떻게 해"라며 오열했다.

이날 연화장에서는 신선준 상사와 손수민.심영빈.박성균 중사, 이상희 하사의 시신도 함께 화장됐다.

손 중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관과 영정을 어루만지며 "엄마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고 했고 박 중사의 아버지는 아들의 관에 손을 얹고 "아들아 잘 가라"고 한 뒤 돌아서 눈물을 훔쳤다.

이 하사의 어머니는 아들의 관 위에 아들이 즐겨 쓰던 안경을 올려놓았다.

장병의 시신과 산화자의 유품은 3시간여 만에 한 줌 재로 봉안함에 담겨 해군2함대로 옮겨졌다.

검은 제복의 해군 장병들은 길목에 도열해 우렁찬 '필승' 구호와 함께 눈물의 마지막 경례를 했다.

◇맨 먼저 발견돼 맨 마지막에 화장 = 가장 먼저 시신이 발견된 남기훈 원사와 두 번째로 수습된 김태석 원사의 시신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에 도착했다.

성남서고에서 노제를 지낸 김 원사의 관이 먼저 화장로로 향했고 그 뒤를 남 원사가 따랐다.

태극기에 덮인 김 원사의 관이 운구차에서 내려지자 어머니는 관을 부여잡고 "아이고 내 아들, 네 얼굴 한번 만져야 하는데, 만져야 하는데..."라며 목놓아 울었다.

김 원사의 어머니는 주름진 오른손으로 관을 어루만지면서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줄 수 있는 따뜻한 체온을 아들에게 전했다.

김 원사의 시신이 화장로로 들어가고 나서 곧바로 남 원사의 관이 운구되면서 영생사업소에는 또 한 번 유족들의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군의관과 가족의 팔에 의지한 채 부축을 받던 남 원사의 어머니는 "기훈아 이놈아, 엄마 혼자 남겨 두고 네가 어딜 가냐, 기훈아 이놈아, 내 새끼야"라며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다.

남 원사의 아내와 친지들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김 원사와 남 원사의 시신은 2시간여 뒤 한 줌의 재로 봉안함에 소중히 담겨 다시 해군 2함대로 옮겨졌다.

<연합>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유영 '우아한 미소'
  • 이유영 '우아한 미소'
  • 혜리 '깜찍한 볼하트'
  • 고민시 '매력적인 눈빛'
  • 지지 하디드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