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음성청탁 제재수단없어 실효 의문” 교육계에서 대규모 인사비리가 불거진 것을 계기로 정부와 교육청 등 각계에서 인사청탁 비리 근절 방안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인사시스템 개혁보다는 인사청탁자 명단을 공개해 불이익을 주는 선에 그쳐 실효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 등 ‘인사청탁자 명단 공개’ 방침 잇따라=최근 노동부와 경찰, 교육청 등이 앞다퉈 ‘인사청탁자 명단 공개’를 골자로 하는 비리 근절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로 개편을 앞둔 노동부는 9일 실적과 능력에 입각해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관행을 만들기 위해 인사청탁 사실이 드러났을 때 청탁내용을 공개하고 향후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또 직원 누구든 특정 직위의 적임자를 수시 또는 정기적으로 객관적 자료를 첨부해 추천하도록 했으며 추천된 내용을 내부 전산망에 공개하기로 했다.
‘비리온상’으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서울시교육청도 지난달 22일 “인사청탁을 하는 경우 명단을 공개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다.
앞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2월 내부회의 석상에서 외부의 유력 인사를 통해 자신에게 인사청탁을 해온 직원들의 실명을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조 청장은 실명이 공개된 1명을 직접 회의실로 불러 청탁 과정과 이유를 해명하도록 했으며 “청탁을 부탁한 직원들의 인사청탁 사실을 인사카드에 기록해 특별관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취지는 좋지만 일회성 선언에 그쳐선 안돼”=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시민과 전문가들은 바람직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사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단골 해결책으로 제시됐으나 대부분 ‘선언’에 그쳤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2003년 인사청탁 교사에 대해 명단을 작성해 관리하고 3회 이상 청탁하면 전보조치나 근무평정을 낮추는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으나 실천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02년 경찰청도 “고위간부 인사에 청탁이 너무 많아 인사권 행사가 어려울 지경”이라며 명단을 공개하고 불이익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지지부진했다. 같은 해 당시 행정자치부 역시 특정학교와 지역 출신자 편중인사 사례를 대통령에게 보고해 인사권자를 문책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인사청탁자 공개 방침은 음성적으로 청탁이 이뤄질 경우 소용이 없고, 비리의 핵심인 고위권력자에 대한 구속력도 없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비판하고 있다.
김영우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교수는 “인사청탁 명단 공개는 대개 일회성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며 “은밀하고 사적으로 이뤄지는 청탁을 낱낱이 찾아내는 것이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재근 참여연대 행정감시팀장은 “뇌물을 주고 청탁을 했어도 인사권자의 이해와 맞으면 공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승진심사 시 자신이 왜 승진해야 하는지 공개적으로 추천하는 방식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이태영 기자 sorimo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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