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기 카리브해가 해적들의 천국이 된 데에는 국제정치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영국과 스페인이 식민지 쟁탈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해적을 이용한 측면이 많다. 이들은 해적을 사주해 경쟁국의 선박과 도시를 약탈하도록 했다. 해적 헨리 모건이 영국령 자메이카 부총독이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라는 해적은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영어 해적(buccaneer)이라는 말에는 ‘노회한 사업가’라는 뜻도 담겨 있다.
소말리아 해적이 또다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한국인 선원 5명 등이 승선한 유조선 삼호드림호가 인도양 한복판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청해부대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이 이를 추적해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인도양 한복판도 해적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이 증명됐다. 소말리아 해적의 활동 영역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말리아 해적은 1990년대 초 내전과 함께 시작됐다.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하자 불법 어업이 기승을 부렸고 어장 보호를 명분으로 해적이 생겨났다. 그러나 사업가와 군벌이 개입하면서 해적은 이제 ‘사업’이 됐다. 현재 해적의 수는 1000명 정도이고 이들이 몸값으로 챙기는 돈이 연간 1억달러로 추산된다.
훗날 21세기가 ‘검은 해적’ 이 판쳤던 시대로 기록될까 두렵다. 소말리야 해적을 퇴치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야 한다. 소말리아 정국을 안정시켜 해적이 자라날 수 있는 토양 자체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전천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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