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다녀온 사이 이름이 바뀌어 있던 사연
저는 신인 연기자 추민기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야구선수 추신수의 친동생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올해 나이 26세로, 신인치고 적지 않은 나이지만 차인표나 지진희 선배님들처럼 저보다 더 늦게 데뷔해 큰 인기를 끈 배우들도 많지 않습니까. 이제 시작 단계인 만큼 조급한 마음을 갖기 보다 한단계씩 밟고 올라 멋진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해 MBC ‘친구-우리들의 전설’(이하 친구)이라는 드라마로 브라운관에 처음 얼굴을 알렸습니다. 극중 주인공 4인방 중 한 명인 중호(이시언 분)의 동생 중기 역을 맡았죠. 원작 영화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인물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한층 강화된 캐릭터로 선보였어요. 특히 극중 패싸움에 휘말리게 되면서 다양한 액션을 과시할 수 있었죠. 드라마 ‘친구’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제가 연기자로 데뷔한 얘기부터 들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어요. 부모님이 집에 안계시고 집에 혼자 있을 땐 방바닥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었는데 그때만큼은 어떠한 생각도 나질않고 그저 편하고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다른 과목들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미술 과목에만 집착했었어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영화를 보다 문득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는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라는 화려함에 끌린 것도 있었지만 나중에야 그것이 결코 화려함이 아닌 것을 알게 됐지요.
어쨌든 연기자를 꿈꾸며 백제예술대학 뮤지컬과에 진학을 하게 됐습니다. 방송연예학과를 지원하지 않은 이유는 ‘배우란 여러 특기가 필요하다’라는 연기 학원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평범해보이지 않은 뮤지컬과를 택하게 된 거였죠. 대학 생활은 재밌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기분을 만끽할 수 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친구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머리 염색도 하고 귀도 뚫었었죠. 나중에 부모님이 제 짐을 가져다주시러 방문하셨을 땐 난리도 아니었죠. 아버님은 뒷목을 잡으시면서 담배만 피우시고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시다가 결국 나중에는 “어울리네 자슥아”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그로부터 이틀 뒤 미국에 있는 형에게 전화가 왔죠. 아마도 부모님이 형이랑 통화 하면서 제 얘길 했나 봐요. 형은 “부모님이 주신 몸인데 거기다 구멍 뚫고 해서 되겠냐. 형도 뭘 할 때 부모님 허락을 받고 하는데 넌 무슨 배짱이냐. 다음부턴 그러지 마라. 직이삔다”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하.
아무튼 그렇게 자유롭고 즐거운 대학 생활을 즐기며 드디어 연기에 첫 발을 디디게 됐지요. 제일 처음 맡았던 작품은 뮤지컬 ‘명성황후’였습니다. 경희궁 야외 특별 공연에 깃발 들고 서있는 청나라 병사였어요. 그저 합창하고 서 있는 게 고작이었지만 언젠가 무대에서 선배님들처럼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처음으로 느끼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무대 뒤에서 어깨 너머로 본 안무를 연습하고 물어보고 해서 그해 ‘명성황후’ 정기 공연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서 그렇게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서서 저의 작은 꿈을 이루었죠.
이제는 저의 형 추신수 선수 얘기를 들려드릴까요? 얼마 전 형이 언론에 “항상 희생만 한 동생에게 고맙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 또한 작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라면을 먹다가 형이 갑자기 보고 싶어 운 적이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있는 터라 주위에서 우애가 정말 돈독한 것 같다고 부러워하십니다.
여느 형제들이 그렇듯 형과의 어릴 때 추억이 너무 많습니다. 형과 함께 목욕탕도 둘이서 같이 가고 동네 지하 오락실에서 어머니에게 받은 우유 값으로 오락을 하곤 했고 공터 앞에서 팽이치기나 딱지치기를 즐겼으며 미니 자동차나 조립식 장난감을 사서 같이 조립하고 했지요.
형은 내가 어머니에게 혼날 땐 항상 왜 나를 혼내시냐며 내 편을 들어줬고, 잘 땐 같이 나란히 누워서 얘기하다 잠들고 내가 친구들 만나러 나갈 땐 내 지갑에 용돈을 슬며시 집어 넣어주면서 '돈 없이 다니지 마라'고 하지요. 이렇게 말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또 눈앞이 흐려지네요. 형은 “내 동생이 꼭 배우로 성공해서 나보다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형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동생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멋진 형이에요.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 형제의 우애가 좋은 것은 부모님 영향도 많이 컸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부터 우리 둘을 앉혀놓고선 “세상 모든 사람 다 쓰러져도 이 세상엔 너희 둘은 같이 서있을 거다. 너희 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잘못을 해도 혼자하면 엄하게 혼이 났지만 둘이 같이 한 거라면 용서 해주셨거든요. 아마 어릴 때 부모님보다 형에게 더 의지를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말 못할 얘기도 형이 대신 얘기해주기도 했고요.
저의 본명은 원래 ‘추신영’이었습니다. ‘추민기’로 바뀐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막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였죠.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니랑 함께 둘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저에게 ‘민기야’라고 부르시는 겁니다. 제가 ‘민기가 누군데요?’라고 물으니 그제서야 어머니께서는 ‘아 내가 얘길 안했네. 니 이름 개명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정말 ‘헐!’ 했죠. 황당했지만 그래도 자식 안 좋은 일 있으라고 그랬겠어요? 여기 저기 알아보시고 돌아다니시면서 알아 보신건데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신영이란 이름보단 민기란 이름이 저에게 좋은 기운을 준다네요. 그런데 정말 개명을 한 후에 정말로 좋은 일이 찾아왔어요.
열심히 여러 작품에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중 한줄기 빛이 찾아온거죠. 지난해 첫 브라운관 데뷔작 MBC드라마 ‘친구-우리들의 전설’에 출연하게 된 것입니다. 곽경택 감독과의 첫 만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부에 계속-
/ 글=추민기
/ 정리=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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