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말이 다시 등장했다. 4년 동안 한국은행 총재를 맡았던 이성태 전 총재가 그제 한은을 떠나면서 ‘화이부동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정부와 중앙은행 관계를 두고 한 말이다.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총재로서 늘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조한 까닭에 그에게는 ‘매파’라는 딱지가 붙었다. “내가 무슨 매파냐”라고 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그의 ‘고집’을 못마땅해하는 사람에게는 비아냥의 뜻이,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신념을 지닌 이들에게는 찬사의 뜻이 담긴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총재로 있는 동안 정부와 한은 사이에 갈등은 있었지만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침해됐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취임했다. 그는 이 전 총재와 뿌리가 다르다. 금융을 공부했지만 주로 관변에서 일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냈다. 그래서인지 “한은도 정부다” 등의 말을 풀어놓아 적지 않은 사람들을 당혹케 했다. 게다가 2년 전 환율정책을 둘러싸고 한은과 일전을 벌인 ‘매파 재경차관’인 최중경 주필리핀 대사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돌아온다. 떠나는 매파 총재는 걱정이 됐나 보다. 화이부동이라는 말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경제정책에는 정답이 없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면 정책 갈등이 빚어질 이유도 없다. 원칙을 주장하지만 결과는 딴판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꿩 잡는 것이 매’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분명한 가치는 있다. ‘동(同)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원칙도 없이 무리지어 다니며 ‘동’을 좇는 자가 많으면 나라경제라는 배는 산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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