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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서 시각을 잃다

입력 : 2010-02-08 21:32:43 수정 : 2010-02-08 21: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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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거리 제공하겠다는 광장
보이는것은 꼬깔콘 천막들 뿐
차라리 한국의 대표적 나무 소나무광장 만들면 어떨지…
광화문 앞 거리를 ‘한국의 대표 광장’으로 조성하겠다며 지금의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데 ‘역사의 복원’이라는 방향을 설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창의와 실용의 정신으로 문화강국을 이루자’는 뜻으로 20t 규모의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졌고, 그의 이야기를 담은 상설전시장을 마련했다. 분수대며, 경복궁역과 광화문역에서 발생하는 지하 용출수를 청계천으로 흘려보내는 물길도 ‘역사 물길’이라는 이름으로 그 안에 한국사 연표를 박아 넣었고, 대규모 행사 때는 차도의 교통을 통제해 더 넓은 광장으로 쓸 수 있도록 정비했다. 흥행 돌풍 드라마 ‘아이리스’ 촬영 협조처럼 국위 선양의 가능성이 높은 행사 때 차량을 통제하고 광장을 통째로 내주는 모습을 보긴 했다. 다가올 설날 연휴에도 교통을 통제하고 다양한 민속놀이 행사를 열 계획이라고 하니 기대를 해보기는 해야 할까. 

김지연 학고재갤러리 디렉터
광화문광장 조성이 의도했던 빛나는 가치들, 예를 들면 ‘차량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고, 경복궁과 북악산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 조망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하며, 세종로의 옛 모습인 육조거리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 체험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에 대한 결실이 지금의 광장 모습이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광장의 모습 및 활용방안에 대해 불만이지만, ‘기획 주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싼 돈 들여 가꾸었던 꽃밭을 갈아엎은 뒤 스케이트장을 조성해서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전 세계에 광장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스키점프 대회도 유치해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빛축제를 위해 광장은 LED(발광다이오드) TV 들에도 자리를 내주긴 했다. KT사옥 외벽, 세종문화회관 외벽도 스크린이 되어 미디어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비롯한 여러 콘텐츠를 상영하며 오가는 차량 운전자 및 시민들의 눈을 자극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정책적으로 시민이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광화문 기획 주체의 행보가 불편하다 못해 안쓰럽다. 교육에서 놀이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입을 벌려 밥숫가락을 떠먹여주지 않으면 불안한 그들의 배려심이 비효율적이어서 안타깝다. 노력 대비 칭찬을 못 받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광장에 올라오는 꼬깔콘 모양의 천막들은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광장이 펼쳐놓는 시각이미지에 익숙해지다가는 미감을 상실할 것만 같아 두려울 지경이다. 광장의 가치는 다만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콘텐츠를 통제할 일은 아니다. 그것은 광장의 정신에 위배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광장에 서서 시위를 일으킬까봐 두렵다면 차라리 광장을 포기하라고 하고 싶다. 광장 조성의 대안으로 미술계 한 어른이 내놓은 제안이 그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적어보자면, 한국의 대표적인 나무인 소나무를 전국 각지에서 올려와 울창한 소나무 공원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소나무광장을 거닐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횡단보도의 위치도 좀더 세심하게 옮기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처음부터 말이 많았던 세종대왕의 위치도 광장이 아니라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위쪽으로 옮겨가는 편이 좋겠다는 말씀도 했다. 그랬을 때, 임금과 신하의 시선과 위치가 지금보다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내줄 수 없는 광장을 차라리 소나무에게 내주는 것이 낫게 생겼으니, 광장 기획자는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지연 학고재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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