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브라질 등 유엔평화유지군 22명도 매몰 숨져
오바마 “인도주의 상기할 때”… 각국 긴급구호 나서 중미 최빈국 아이티는 12일 240년 만의 강진으로 건물이 붕괴되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다. 진앙에 근접한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는 구조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건물 잔해더미 속에서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이 1770년 이후 아이티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지진학자들에 따르면 두 개의 대륙판이 부딪치면서 지진이 발생한 데다 깊이가 지표면에서 8㎞밖에 되지 않아 피해가 컸다.
◆아비규환의 지진 현장=로이터통신 기자는 지진 당시 “모든 것이 흔들리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이 ‘세상에(Jesus), 세상에’를 외치며 전 방향으로 뛰어다녔다”고 전했다. 포르토프랭스에서는 강진 직후 먼지와 연기가 솟아올라 이불처럼 도시를 덮었으며 10여분쯤 시야가 뿌연 상태가 계속됐다.
이번 강진으로 아이티 대통령궁을 비롯해 재무부, 문화통신부 등 주요 정부 건물과 의회, 성당, 병원이 붕괴됐다. AP통신은 이 지역 건물의 60%는 날림으로 지어져 평소에도 안전하지 않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건물의 철골은 휘어진 채 흉한 모습을 드러냈고 공중에 매달린 콘크리트 구조물은 생존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AP는 아이티 주민들이 충격에 휩싸여 거리를 배회하고 있으며 건물 잔해에서 구해낸 시신이 천에 덮인 채 거리에 쌓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구호단체 ‘빈민을 위한 식량’ 관계자는 “도시 전체가 어둠에 덮였다”며 “사람들이 손전등에 의지해 희생자들을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경없는 의사회 관계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집이 사라져 거리에서 자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반쯤 무너진 상점에서 생필품을 훔치고 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수천명 인명피해 우려=전화 등 통신수단이 끊겨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백, 수천명이 사망했을 것이란 증언이 나오고 있다.
르네 프레발 아이티 대통령은 “지진 현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수많은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가 매몰됐다”고 밝혔다. 프랑스 알랭 주아양데 협력담당 국무장관은 “포르토프랭스의 몬타나호텔 붕괴 당시 300명 중 100명 정도만 빠져나왔다”며 약 200명이 실종상태라고 전했다.
유엔 아이티 안정화지원단 사령부의 건물도 파손돼 직원들이 매몰됐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프랑스 외무장관은 “에디 아나비 유엔 평화유지군 대표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숨진 것 같다”고 밝혔다. 아이티에는 현재 20개국에서 파견한 7000명 규모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유엔 측은 100명 이상의 직원이 사령부 건물 잔해에 매몰된 상태이며 다른 현장에서도 40명의 직원이 실종된 상태라고 발표했다. 유엔평화유지군 중 현재까지 중국인 8명이 매몰되고 브라질인 11명, 요르단인 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 필립 크롤리 대변인은 현지 대사관 직원의 말을 인용해 “거리에서 건물 잔해에 맞아 사망한 듯한 사람들이 다수 목격됐다”며 “심각한 인명피해가 분명해 보인다”고 밝혔다. 포르토프랭스 가톨릭 대주교도 숨진 채 발견됐다.
◆긴급 지원 나선 국제사회=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과 베네수엘라, 페루 등 중남미 이웃 국가들은 긴급 지원 의사를 밝혔다. 유럽연합(EU)은 300만 유로를 긴급 지원한다고 발표했고 미주개발은행(IDB)은 20만달러의 긴급 원조자금을 약속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인도주의를 상기할 때”라며 지진 구호활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브라질은 1000만 달러의 자금과 14t의 식량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도 긴급구호팀 파견을 서두르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고통받고 있는 형제자매를 위해 모두가 관대함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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