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일본 정치인의 말과 현실은 여전히 괴리가 크다. 도쿄 최고재판소는 지난해 11월 강제연행과 불법노동을 강요한 일본기업을 상대로 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가슴속 응어리진 한이라도 풀고자 했던 정신대 할머니와 그 가족의 청구를 외면했다. 이번엔 일본의 사회보험청이 근로정신대 할머니를 ‘우롱’했다. 후생연금 탈퇴수당 청구에 대해 최근 1인당 99엔(약 1280원)을 송금했다. 강제동원 및 노동 강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화폐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채 푼돈을 지급한 것이다.
과거 반성은커녕 정신대 할머니를 조롱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청구한 ‘연금수당’은 연금 불입기간이 짧아 연금을 받지 못한 경우로 마땅히 반환해야 할 돈이다. 그럼에도 반세기 동안 방치했다가 고작 과자 한 봉지 값을 주고는 인터뷰는 거절했다고 한다. 양심이 찔리긴 했던 모양이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지난해 2월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폭력적 동화정책에 대해 사과했다. 애버리지니 할머니들을 국회에 불러놓고 그 앞에서 눈을 보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일본 지도자들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다. 일본 정치인의 과거사 사죄 표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진정성을 가지고 역사의식을 반영하는 자세로 사과하지 않으면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다.
내년이면 한일병합 100년을 맞는다. 아키히토 일왕의 방한 얘기도 나돈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 문서 공개, 희생자 유골 조사·발굴 없이 ‘과거사 반성’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대해 본다.
임국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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