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낸 자신의 불교 연구서 ‘아소까’(민족사) 출간에 맞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급거 귀국한 일아(63) 스님은 진정한 정치가가 없는 시대의 현실을 이렇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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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아 스님은 “아소까의 진실되고 관용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 정치인들이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
수녀 출신인 일아 스님은 “고대 인도의 왕인 아소까는 가톨릭으로 말하면 성 바오로 같은 인물입니다. 아소까왕 때문에 불교가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불교가 된 것이죠”라고 운을 뗐다.
“아소까는 부처님 열반 후 약 200년쯤인 기원전 250년에 통일인도를 통치했던 왕인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기 위해 스스로 전쟁을 완전히 포기한 역사에서 유일한 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쟁을 막기 위해 외국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평화를 몸소 실행했죠.”
스님에 따르면 아소까왕은 백성을 위해 초기 불교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지시설을 만들고 자선 활동에도 주력했다. 다른 종교에도 보시하고 공경을 표할 정도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지난해 12월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이란 책을 낸 지 불과 1년 만에 신간을 낸 스님은 “아쉽게도 우리시대에는 철저한 성자였던 아소까왕과 같은 인물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개탄했다.
일아 스님이 아소까왕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 수많은 세월이 흘러 전 세계로 퍼져나갔듯,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갈 길이 바쁘기만 하다.
“나이를 생각하면 기운이 빠져요.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뜻을 알리고 싶어요. 나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나 할까요.”
스님은 지난 1년간의 생활에 대해서도 살짝 귀띔했다. “사람들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TV나 신문도 안 봤어요. 이것저것 다 하면 언제 연구하고 책을 씁니까. ‘토굴’에서 원전 번역하고 지도 교수님 자문도 받고 우리말화 하느라 정신없었죠.”
일아 스님은 LA의 자그마한 집필 공간을 ‘토굴’이라 불렀다. 토굴에서 그는 ‘아소까’를 출간하기 위해 판독 가능한 38개의 아소까 바위 각문과 돌기둥 각문을 완전히 번역했다. 인도의 고대어인 팔리어를 18년간 공부한 그는 팔리어와 유사한 ‘쁘라끄리뜨어’로 쓰여진 원전을 충실히 한글화했다.
일아 스님은 “책을 쓰다 보니 법정스님 같이 진한 감동을 주는 책을 쓰고 싶다는 원력(願力)을 세우게 됐다”며 수녀였던 자신의 출가(出家) 사연을 털어 놓았다.
“여자 중학교에서 수녀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제가 직장 여성화되는 것을 느꼈어요. 수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죠. 우연히 법정 스님의 책을 읽게 되면서 배타적이지 않은 불교에 호감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법정 스님을 찾아가 솔직한 사정을 고백했습니다. 스님이 장문의 편지를 써 주시더군요. 수녀원을 나와 편지를 들고 비구니 사찰인 울산 석남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법회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습니다. 오해와 선입견이 있을지 몰라 석남사에 처음 갔을 때는 수녀였다는 얘기는 안 했죠. 물론 이 사실이 나중에 발각됐지만요….”
스님은 가톨릭에서의 수행도 좋았지만 불교식 수행이 좀 더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가톨릭도 물론 좋지요. 지금도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수행을 높이 평가합니다.”
출가 후 학문의 길을 걷기로 한 일아 스님은 1991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서울여대를 졸업한 그는 중도 편입할 수도 있었지만, 영어를 새롭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뉴욕 스토니 브룩 주립대학교 종교학과를 처음부터 다녔다. 이후 유니버시티 오브 웨스트에서 비교종교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이었다. 이후 로메리카 불교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지금은 스리랑카인 지도 교수인 아난다 구르게 교수의 조언을 받는 것 말고는 두문불출하며 초기 불교 연구와 저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연구할 생각은 없습니까”라는 질문에 일아 스님은 “아직은 미국에서 공부해야 할 게 많습니다. 벌써 18년 생활하다 보니 미국에 적응이 된 것도 같네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그는 인터뷰 후 곧바로 ‘출생지’나 다름없는 석남사로 향했다. 석남사 ‘식구들’에게 책 100권을 공양한 일아 스님은 서둘러 LA로 돌아갔다. 내년 봄에는 칼럼집을, 가을엔 불교 연구서를 내기 위한 ‘촌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글·사진 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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