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통틀어 아름다움만큼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매혹시킨 주제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움에 매혹당하는 것에는 별도의 이유나 목적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꽃미남들이 사회의 중심인물이 되어 마음껏 활개를 쳤던 시대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미소년들
세계 최초로 민주주의를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미소년들에 대한 열광과 사랑은 지극히 공공연했다.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나 경각심이 거의 아니 전혀 없었던 고대 그리스의 사람들은 특히 남자 그 중에서도 미소년들을 지극히 밝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출중한 미모를 지닌 몇 몇의 미소년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아름다움’을 특권으로 화려한 공식 연애를 하기도 하고, 복잡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외모는 호감을 자아냈고, 그 호감을 이용하여 입신양명을 이루는 것은 당당한 일이었다. 천부적인 아름다움으로 당대를 뒤흔든 미소년 중에 잘 알려진 희대의 미남으로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소크라테스의 연인 알키비아데스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연인 페트로클로스가 있다. 젊고 아름다우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멋있는 연인까지 거느린 이들은 모두 특권계급인 ‘귀족’이었고 타고난 미모와 몸매를 가꾸기 위해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의 시시콜콜한 연애사와 외모 혹은 패션은 일거수일투족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유행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연인들보다 훨씬 일찍 죽음을 맞이했다. 이들은 소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모습 그대로 미모의 천적인 ‘세월’의 공격을 받기 전, 매우 비극적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전설적인 미소년으로 기록될 수 있었다.
동양, 신라 시대의 화랑 제도
우리나라에서도 남자, 특히 미소년의 아름다움이 높이 평가되었던 적이 있다. 고대 도시 국가였던 아테네나 스파르타보다는 훨씬 큰(!) 영토를 가진 신라 시대의 화랑제도가 바로 그 증거다. 신라인들은 단순히 미소년의 아름다움을 칭송하거나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미모를 가꾸고 지킬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제도화 시켰다.
화랑 제도는 화랑 전체를 통솔하는 한 명의 우두머리와 비슷비슷한 영향력을 가진 몇 명의 부 우두머리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여러 명의 낭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낭도들은 일반 백성 중 나이가 어린 남자들이 주를 이루었고 화랑으로 선발된 미남자들은 모두 미모와 자태가 출중한 왕족과 귀족 출신이었다. 이 선택받은 특별한 미소년 군단은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심신을 수련하고 적절한 운동과 전투 훈련으로 몸을 단련하며 공공연하게 얼굴에는 곱게 분칠을 하고 볼은 복숭아 빛으로 입술은 빨갛게 물들이며 화장을 했다.
그리스와 신라의 미소년 열풍 혹은 미소년 사랑의 또 다른 공통점은 얼굴 뿐 아니라 몸매도 본다는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신라의 화랑들이 국가적인 지원 하에 마치 학원이나 학교처럼 여럿이 함께 모여 때로는 경쟁하듯 때로는 함께 놀 듯 체계적으로 신체를 단련하는 시스템이라면, 그리스의 미소년들은 철저하게 개인 교습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그들은 대개 ‘애인’으로 정해진 어른 남성들로부터 심신을 단련하는 법을 비롯하여 ‘남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따라서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미리 미리 롤 모델이 될 만한 ‘멋진’ 애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동경을 살 만한 멋진 남자는 예나 지금이나 늘 빨리 품절되곤 했다. 그래도 그와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은 욕심을 가진 미소년들은 말 그대로 온 몸을 던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했다.
반대로 가진 것이라고는 ‘미모’ 밖에 없는, 발군의 미소년들은 일찌감치 멋진 남자에게 구애를 받아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 관계에는 어떤 뇌물이나 인맥 이상으로 미모가 승패를 좌우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힘없는 미소년들에게도 제법 공평한 승부였다. 반면 신라의 낭도들은 몇 명의 부 우두머리 중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화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글로벌 시대의 미남스타
하지만 꽃미남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관리했던 신라인들은 놀라울만큼 자신들과 비슷하게 꽃미남에 열광했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존재했던 것을 몰랐다. 당시에는 교류의 폭이 좁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동양과 서양간의 교류는 지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과학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영화와 TV가 등장하고 보급되면서 세계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긴 했어도 거의 비슷하게 실시간 열광 효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잘 생긴 외모를 굳이 망가뜨리지 않고 온갖 엄친아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스타의 반열에 우뚝 선 로버트 테일러, 빡빡 깍은 머리에 ‘루저’급의 작은 키를 지녔지만 깔창은커녕 맨발로 당당하게 활보하며 전혀 동양적이지 않은 얼굴로 무려 태국의 ‘왕’을 연기한 율 브린너, 파격적인 의상, 더 파격적인 춤, 훨씬 더 파격적인 느끼함으로 중무장을 하고 나온 엘비스 프레슬리의 기름진 섹시함은 세계를 관통했다. 개성과 특성이 각기 다른 외모를 지녔지만 한창 시절, 이들은 ‘무조건’ 잘 생긴 특급 스타로 분류되었고 취향이 다르다고 해도 감히 외모에 토를 달 순 없었다.
이 시절, 세기의 미남들이 줄줄이 등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미남의 장르와 범위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애매한 얼굴로 호감형 캐릭터를 연기한 많은 남자들이 ‘미남’이라는 수식어를 마음껏 듣는, 최고의 수혜를 누렸다. 미남에 대한 광범위한 기준과 다양한 장르의 취향도 존중받으며 자신과 맞지 않는 미남에게는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는 요즘으로썬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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