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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천호동굴'에 대한 이야기

입력 : 2009-11-10 17:13:49 수정 : 2009-11-10 17: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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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는 여산면 호산리 산21번지의 46,324m²에 대하여 1966년 2월 28일 천연기념물 제177호로 지정했다. 이곳의 정식명칭은 천호동굴(天壺洞窟)이며, 여산면 호산리 천호산 기슭의 시작부에 있는 석회동굴이다. 지층은 옥천계(沃川系)의 최상부에 속하는 금마층(金馬層)에 있다. 이 암층은 규암, 석회암 및 흑색천매암들이 섞여 있는 흑운모 편암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 석회암층에서 발달한 석회동굴이다.

◇ 바람의 통로, 천호동굴

이곳은 여산송씨문중의 소유로 석회석에 의한 천연동굴이 있으며, 산위에서는 근래들어 석회광산을 운영하였었다. 동국여지승람 여산군 산천조에 ‘호산 산록으로 들어가 땅속으로 흘러 서쪽에 이르러 시내를 이룬다. 물이 나오는 구멍은 지름이 1장 가량인데 속칭 용추(龍秋)라 전하고 날이 가물면 비를 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구여산군지에도 천호동굴을 풍혈이라 부르며, ‘풍혈은 여산면 천호산 북쪽 골짜기에 있는데 항상 은은한 뇌성이 들리고, 춘분 이후에는 바람이 나오고 추분이후에는 바람이 들어간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여름에 찾은 천호동굴은 여느 지하 동굴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어나와 땀을 식혀주었다. 잠시만 서있었는데도 더위가 걷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등골이 오싹하는 소름이 돋는다. 찬 기운은 진안의 풍혈냉천이나 밀양의 얼음골과도 같으며 여타 유명한 지하동굴의 입구와도 같았다.

◇ 미로와 같은 동굴 내부, 백옥미인을 연상케하는 대리석

천호동굴은 총연장 680m에 달하는 석회동굴이지만, 그 규모 혹은 2차 생성물로 보아 크게 발달하였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다. 일반지형에서 석회암층의 절리에 따라 용식되어 동굴통로가 개설된 정도로 볼 수 있다. 동굴의 입구에서 250m 들어선 지점에는 높이가 12m, 너비 10m, 총면적 40여㎡에 달하는 공동(空洞)이 있어 수정궁으로 불린다. 이곳에는 직경 5m, 높이 약 10여 m에 달하는 순백색의 대석순이 내부 경관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또 석주 뒤에는 직경 2m의 작은 연못이 있는데, 방해석(方解石)이 결정(結晶)을 이루어 아주 신비스러운 모습을 만들어준다.

동굴의 형성과정은 약 2억 5천만년에서 4억년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종유동(鐘乳洞)과 같이 오랜 기간 동안 지하수에 의해 암석이 차차 녹는 용식작용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는 물줄기에 의해 좁고 심한 굴곡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동굴내부에는 통로가 협소하여 사람의 진입이 불가능한 미로동굴이 계속된다. 특히 최근에는 동굴이 이루어지게 된 지표면의 돌리네(doline)로부터 반입된 토사에 의하여 동굴내부의 바닥쪽 동상이 높아져 동굴통로의 통행에 지장을 주고 있다. 천호동굴은 사실상 동굴내부에 2차 생성물들이 매우 빈약한 석회동굴이나, 호남지역 일대에서는 유일무이한 희소가치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지층의 석회암은 암질이 결정질을 이루며 백색을 띠고 있어, 건축자재 또는 미술조각용 석재 등을 채굴하기 위한 석회광산이 있다. 여러 무늬의 아름다운 치장재는 아니더라도, 순수하고 깔끔한 피부를 자랑하는 대리석은 백옥미인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 품질은 떨어지는 편으로 고급재료로는 인정받지 못하여 바닥재에 사용하는 정도다. 또한 채산성이 낮아진데다가 석회동굴의 붕괴위험이 따라 최근에 그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 하늘을 향해 솟은 천호산과 구불구불한 동굴 길

전국에 있는 동굴에 대하여 문화재 지정현황을 보면 천연기념물 15개, 시도기념물 19개, 등록문화재 8건으로 되어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제주 김녕굴과 만장굴, 울진 성류굴, 익산천호동굴, 삼척 대이리동굴지대, 삼척초당굴, 제주 한림용암동굴지대, 단양고수동굴, 평창백룡동굴, 단양온달동굴, 제주 어음리빌레못동굴, 제주당처물동굴, 제주용천동굴, 제주수산동굴, 제주선흘리벵뒤굴 등이 있다. 또 각 시도기념물로는 단양천동굴, 영월용담굴, 화순백아산자연동굴, 문경모산굴, 영월연하동굴, 영월대야동굴, 정선화암굴, 정선비암굴, 안동미림동굴, 강릉서대굴, 강릉옥계굴, 강릉비선굴, 태백용연굴, 삼척저승굴, 삼척활기굴, 무주 마산굴, 제주북촌동굴, 태백둔동굴, 합천베티세일동굴 등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강점기에 태평양을 향하여 감시하는 용도로 파놓은 동굴진지가 제주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도 8개소나 된다.

천호산은 평야지대인 익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우뚝 솟은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형상에다가 산 중턱에 오래된 동굴이 있으니 마치 병 끝의 주둥이와 같은 격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향해 세워 놓은 병과 같아서 천호산(天壺山)이라 불리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호동굴로 올라가는 길은 비좁을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하기도 하다. 가까운 곳까지 마을이 있고 현재도 사람이 살고는 있으나, 광산채굴이 멈춘 뒤로는 길조차 방치되어 불편하기 그지없다. 지난번 방문 때 할머니 한분이 옥수수자루를 이고 시내에 팔러 나가시던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혼자 걷기도 어려우실텐데 도대체 어떤 밭에서부터 옥수수를 따 날랐을까 생각해본다.

동굴의 입구에 있는 작은 소로를 거쳐 계속 올라가다보면 천호산으로 이어지는 741번 도로를 만난다. 소로는 임도인지 자연발생적인 도로인지도 구분이 안 가지만, 천호산으로 뻗은 도로는 잘 정리되어 있으며 동쪽 경사면에 천주교 천호성지를 안고 있다. 이 산의 정상부에는 천호산성이 있는데 그리 오랜기간 활용되었던 산성은 아닌 듯하다.

◇ 방치된 천연기념물

천호동굴 역시 아주 오래된 동굴이니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겠지만, 최근 1965년의 답사를 거치면서 자세히 드러났다. 내가 어렸을 당시 여산 송씨가 이웃에 살고 있었는데, 고향 여산에 다녀온 사람들을 통하여 전해들은 천호동굴은 신비의 굴로 여겨졌다. 그때는 내가 어렸을 뿐만 아니라 교통도 불편하여 방문하지 못했었는데, 발굴조사가 끝난 후에는 입구가 좁고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내부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산재한 다른 지역의 유명한 동굴들은 많이 보아왔지만, 비록 작을지라도 소중한 우리고장의 동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끝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비록 출입이 제한된 동굴이기는 하나, 어엿한 천연기념물인 것을 감안하면 좀더 현실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선 입구를 넓히고 진입로의 경사면을 다듬는 작업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입구에 차양을 해서라도 빗물을 막아주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이라든지 쓰레기가 나뒹구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동굴의 입구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일에 행동이 빠른 누군가가 벌써 촛불을 켜고 제단을 쌓은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마치 동굴 안에 사는 어떤 신을 불러내어 섬기는 것처럼 생각된다. 설사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볼 수는 없다하더라도, 우리지역에 단 하나밖에 없는 천연기념물을 이렇게 방치한다는 것은 문화시민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서홍규 시민기자, seohong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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