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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향 상임지휘자 김대진 “텅 빈 마음이라야 음악을 할 수 있다”

입력 : 2009-10-05 22:17:55 수정 : 2009-10-05 22: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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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로… 교수로… 1인3역
자라는 후배들보며 고민도 많아… 영재에만 관심쏟는 현실에 불만
오랜 생명력지닌 음악가 만들어야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그리고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김대진(47) 교수의 24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고 쪼개도 늘 모자란다.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실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만났다. 명절을 앞두고도 그의 스케줄은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교향악단 연습을 끝내고 학교로 오는 길, 점심은 여느 때와 똑같이 차 안에서 김밥으로 때웠다. 이 세상 김밥은 혼자 다 먹은 듯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방은 주인을 빼닮았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끔히 정돈된 공간은 단아하면서도 명석한 그의 음색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요즘 들어 피아노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웃음을 지은 김 교수는 “음악가에겐 빈 공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머릿속이 바빠지면서 든 생각이다.

◇김대진 교수는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면서 악기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여 봤지만 그래도 피아노에 대한 사랑은 어쩔 수 없다”며 “‘완전한 악기’라는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피아노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음악하는 마음은 어떤 걸까 고민해봤는데 답은 비어 있는 마음에 있더라고요. 음악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비워내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어떤 경지에 오른, 넓은 공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잖아요. 존경과 동시에 부러운 부분이죠.”

백건우는 오롯이 연주자 길만 걷고 있다. 김 교수는 “안 가르치는 것도 노력”이라고 했다.

“마음을 이것저것으로 채우는 일은 쉬워요. 오히려 채워져 있는 걸 버리고 빈 공간으로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작업이죠.”

이야기의 방향은 자연스레 백건우로 향했다. 수원시립교향악단은 백건우와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19일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호흡을 맞춘다. 김 교수는 “(함께 서는 건)처음이라 떨린다”고 했다. 그의 지휘봉은 초긴장 상태다. 줄리아드 음대 선후배 사이지만 가깝게 지낸 건 6년 전부터다. 그가 한 잡지에 백건우 글을 썼던 게 첫 인연이 됐고, 이후 제자 김선욱의 연주로 몇 번 만나면서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요청했다. 대선배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 연주회는 단원·관객에게도 의미있는 무대다. 단원들의 성장뿐 아니라 홈그라운드에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기회다. 지난해부터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수원 시민의 자랑거리’를 오케스트라의 현실적 목표로 잡았다. 지난 6월엔 수원 시향의 뉴욕 카네기홀 데뷔 무대도 가졌다. ‘청소년 음악 교실’ 등을 통해 클래식 대중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오케스트라에도 색깔 변화를 줬다. “단원들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이 커지면서 음색이 다채로워졌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웃음꽃이 만발했다.

오케스트라 방향을 잡아가는 것과 함께 그에게 가르치는 일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악계의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김선욱, 손열음 등이 그의 제자다. 그들이 쑥쑥 자라는 만큼 고민도 늘어난다.

“잠깐의 스포트라이트보다 긴 생명력을 갖는 게 더 중요해요.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그게 연주를 잘한다는 절대적 의미를 갖는 건 아니죠.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들이에요. 기성 음악인과는 달리 틀도 형성되지 않은 단계라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죠.”

넘치는 관심은 독이다. ‘영재’에만 포인트를 맞춰 음악계 전체가 돌아가는 것 역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영재가 많은 것도 중요하지만 백건우처럼 오랜 생명력을 가진 음악인으로 자라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도 남다르다. 더 이상 곡 레슨은 의미가 없다. 정보 홍수 시대에 아이들은 이미 누가 언제 어떻게 작품 해석을 하고 연주했는지를 꿰고 있다.

“모든 연주자는 생긴 대로 연주해요. 예를 들어 말이 굉장히 빠른 아이는 연주할 때도 빨라지는 습성이 있죠. 주위가 산만한 아이는 연주도 정신없어요. 오랜 기간 가르치면서 인간적으로 교감하려고 해요.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열린 마음으로 레슨하면서 하드웨어를 고치려고 하죠.”

인터뷰가 한 시간 넘게 진행되자 교수실 밖엔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수업을 받기 위해서다. 그에겐 숨 돌릴 틈조차 없어 보였다. 그만의 여백은 어디에서 찾는지 물었다. 음반작업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실은 어제까지 슈베르트 소나타 녹음 작업을 했어요. 3월부터 시작했는데 겨우 끝냈죠. 연주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알게 됐어요.”

레이블은 ‘김대진’이다. 중간 유통과정 없이 그가 직접 연주, 프로듀싱, 음반발매까지 다 한다. 연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했다.

“세계적인 연주가들도 자기 이름으로 레이블을 달아 음반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새로운 일은 아닌데 그래도 국내에선 활발히 이뤄지는 작업은 아니죠. 음반 시장이 안 좋다고 음반 작업까지 게을리 할 수는 없잖아요.”

김 교수의 노골적인 ‘바쁨’엔 충분한 이유가 깃들어 있었다. 식사를 함께하자는 약속은 웬만하면 사양한다. 그 시간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단다. 즐거운 저녁 식사 시간은 빼앗겼지만 대신 학생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날 저녁도 ‘또’ 김밥이지만 그는 “이 부분만큼은 충분히 양보할 수 있다”며 웃었다.

윤성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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