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계가 농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농업인 안전공제 자료와 별개로 소방방재청의 구급자료를 분석한 결과 매일 한 명 이상의 농민이 농기계 사고로 119구급차에 실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기계로 인한 재해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사고원인 분석은커녕 정확한 통계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농기계 사고를 줄이려면 농민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과 함께 농기계 점검이 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계화한 농촌, 위협받는 농민=소방방재청 재난관리정보센터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농기계 안전사고는 2006년 320건에서 2007년 389건, 2008년 447건으로 3년 만에 약 40% 증가했다. 안전사고의 절반가량은 모내기철인 4, 5월과 수확철인 9, 10월 등 농번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2006년에는 농번기 4개월 동안 전체 사고의 절반이 넘는 163건(50.9%)이 발생했다. 2008년에는 221건(49.4%), 2007년 178건(45.7%)이 농번기에 일어났다.
농기계 유형별로는 경운기와 트랙터로 인한 사고가 가장 많았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위해 사례 300건을 분석한 결과, 경운기와 트랙터로 인한 사고가 각각 35.3%(106건), 10%(30건)로 높게 나타났다. 사고 부위는 팔·손·손가락이 51%로 가장 많았으며 다리·발·발가락이 16.7%로 뒤를 이었다. 치료기간은 ‘2주 이상’의 중상해 사고가 20%를 넘었고 사망 사고도 3건이나 됐다.
농기계 안전사고의 이 같은 증가는 농기계 보급률의 증가, 농업인구의 고령화와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 농가의 농기계 보급대수는 2008년 말 현재 232만6000여 대에 달한다. 전체 농가수가 121만여 가구인 것을 고려하면 농가당 2대꼴로 농기계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농기계 종류별로는 경운기가 73만9000대로 가장 많고 이앙기 30만9000대, 트랙터 25만3000대, 콤바인 8만5000대 순이다.
◆허술한 농기계 안전교육=농기계 보급은 갈수록 늘고 있지만 안전사고 예방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민들은 트랙터·콤바인 등 농기계를 구입할 때 판매업체를 통해 간단한 조작법이나 안전수칙을 들을 뿐 이후 체계적인 교육이나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류중원(58)씨는 “트랙터와 콤바인을 쓰고 있지만 제대로 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며 “농번기에 앞서 점검을 받을 때 대리점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는 정도”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농협 주최로 가끔 안전교육이 실시되지만 안내책자를 배포하거나 마을회관에 주의사항이 적힌 포스터를 붙이는 수준이다. 농진청이 실시하는 농작업재해감시체계도 45개 마을만을 대상으로 이뤄질 뿐이어서 사실상 전체 농기계 사고를 파악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농기계 등록제가 시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농기계에 대한 안전관리나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농진청 신승엽 연구관은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 농촌 마을을 돌며 농기계 안전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안내문을 돌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면서 “농가를 일일이 돌며 교육하기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6월 발표한 ‘농업기계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농민이 농기계를 구입하면서 안전운행 등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는 경우는 39%에 달했다. 특히 농기계를 구입한 농가의 74%가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기계를 구입한 후 임의로 구조를 개조·변경하는 경우도 34%나 됐으며, 임의 개조한 농민의 82%는 전문가 검사를 받지 않았다.
농기계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이 농업인 자신의 과실이라는 점에서 안전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농촌진흥청이 2006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트랙터 사고의 100%가 부주의·운전미숙·음주운전 등에 의해 발생했다. 경운기 사고 역시 85.7%가 운전자 과실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트랙터 같은 농기계를 안전관리 대상으로 지정, 여기에 부착해야 할 안전장치 규정을 체계화한 ‘농업기계화 촉진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마련, 내년 4월부터 적용키로 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대부분의 농기계에 이미 부착돼 있는 안전장치를 세분화한 수준이고, 정기점검 등에 대한 규정도 빠져 있다. 게다가 안전장치 검사 역시 강제사항이 아닌 제조업체가 신청해야 이뤄지기 때문에 농민 안전사고 감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한양대 의대 이수진 교수(산업의학과)는 “농기계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농민에 대한 교육과 농기계 안전점검이 선행돼야 한다”며 “이와 함께 안전사고의 다양한 원인을 분석해 사례별 예방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염호상(팀장)·박성준·안용성·엄형준·조민중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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