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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잃은 슬픔, 분노되지 않게 나눔 실천”

입력 : 2009-09-18 09:52:25 수정 : 2009-09-18 09: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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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살된 용산 초등생’ 부모 3년째 기부
강력범 피해 가족 위해 10년간 1000만원씩 약속
올해까지 18가구 지원
“슬픔이 분노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해봅니다. 저희 도움이 잠시나마 격려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허모(42)씨와 이모(41)씨는 3년 전 소중한 딸을 잃었다. 비디오를 반납하러 나간 딸은 근처 신발가게 주인에게 끔찍하게 살해돼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른바 서울 ‘용산 초등생 피살사건’이다. 부모는 외동딸을 잃은 슬픔과 범죄 피해자 가족의 고통을 알아주지 못한 사회에 두 번 상처받았다.

◇용산 초등생 피살 사건 피해자의 부모가 2007년 3월 서울 종로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에서 ‘미연이의 수호천사 기금’ 협약식을 체결한 뒤 재단에서 받은 책을 보고 있다.
사진=아름다운재단 제공
고통 속에서 열 달을 지내던 어느 날, 이들은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향해 분노하지 않고 다른 가족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2007년 1월 아름다운재단을 찾아가 당시 딸의 나이인 10살에 맞춰 10년간 매년 1000만원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신들처럼 강력범죄로 인한 피해를 본 가족을 위해 써 달라고 부탁했다. 재단은 소중한 딸 미연이가 누군가에게 예쁜 수호천사가 되기를 바라는 이들 부부의 뜻을 기려 ‘미연이 수호천사 기금’을 만들었다.

당시 이들 부부를 만난 재단 관계자는 “강력범죄 피해자를 돕는 일에 마땅히 기부할 곳이 없으니 꼭 돈을 받아 달라며 본인도 피해자의 부모라고만 말했다”며 “나중에야 그 결심이 용산 초등생 살해사건으로 딸을 잃은 부모님의 큰 용기의 시작인 것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 기금은 2007년 3월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4600만원 상당이 조성됐다. 이 중 4000만원 상당은 허씨 부부가 기부한 돈이고 600여만원은 이 사연을 알고 개인 기부자들이 보내온 것이라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재단은 한국범죄피해자지원중앙센터와 함께 매년 범죄 피해자 가정을 선정해 지난해까지 총 10가구에 1900만원 상당, 올해는 8가구에 200만원씩을 지원했다. 지원받은 이들 중에는 ‘유영철 사건’, ‘정남규 사건’ 등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 가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은 아직 다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노출을 꺼리는 이들 부부 대신 기금을 전달하면서 이들이 직접 적은 카드를 함께 건넨다고 한다. 카드에는 “소중한 딸 아이를 잃었습니다. 슬픔이 분노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해봅니다. 저희 도움이 잠시나마 격려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고 재단은 전했다.

재단 관계자는 “처음 기부할 때에는 슬픔을 채 이기지 못한 상태였지만 기부를 통해 조금씩 아픔이 치유되는 것 같아 보인다”며 “이 기금의 지원을 받은 가족도 미연이 부모님 선행에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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