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40∼50대 많고 여성은 80대·20∼30대順
우울증은 사회적 편견으로 제때 치료 못 받아
주부 A씨는 약을 먹거나 한강으로 뛰어드는 등 여러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조발성 치매에 걸린 딸을 5년 넘게 돌보고 있다. 남편이 “고생한다”고 자주 위로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못한다. 딸을 시설로 보내면 조금 낫겠지만 죄책감에 그러지도 못했다.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지만 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100명이 넘는 사람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절반가량은 A씨처럼 가족 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기 쉬운 우울증 치료는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으로 제때 치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자살예방의 날을 하루 앞둔 9일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자살예방정책 수립에 있어서 고려사항’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연간 우리나라 자살 시도자는 모두 3만7289명으로 추산된다.
복지부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국가응급의료정보망(NEDIS) 자료와 2006년부터 2008년까지의 응급실 내원환자 표본 심층조사의 자료 등을 활용해 이 같은 추산을 내놓았다.
2007년 NEDIS 자료에 따르면 자살시도 환자는 1만917명이었다. 이 통계에 포함된 인원은 전체 응급실의 29.2%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연간 3만7289명이 자살을 시도한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자살시도자의 연령 분포는 남성의 경우 40, 50, 60, 30대 순인 반면, 여성은 80세 이상, 20, 30대 순이었다.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 맞딱드리게 되는 삶의 문제로, 여성은 아예 젊거나 아예 늙어 극단적인 선택 상황에 직면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퇴원환자들과 병원 3곳의 응급실 상황을 표본조사해 자살 동기를 살펴본 결과 가족과 갈등이 절반 정도(퇴원환자의 42.5%, 응급실 표본조사의 46.5%)를 차지했다. 가족 중에서도 배우자와 갈등이 22.9%로 가장 많았고 부모·자녀와 갈등(10.6%), 연인과 갈등(8.6%) 순이었다.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진 정신적인 문제는 전체 동기의 14.1%(우울증 10.1%)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에 강한 거부감과 편견을 갖고 있어 이 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중에 입원을 거부한 사람이 54%나 될 정도로 치료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보니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수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정신과 전문의)은 “우울증이 있는데도 ‘보험에 들지 못한다’, ‘취업이 안 된다’는 등 편견 때문에 치료에 이르기까지 3년이나 걸리고 그 중에서도 15% 정도만 6개월 이상 치료를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면서 “자살과 우울증은 비례관계에 있는 만큼 적극적인 조기발견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자살예방의 날=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2003년 국제자살예방협회가 주관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후원해 제정한 날이다. WHO에 따르면 지난 45년간 자살률은 세계적으로 60% 증가했고, 15∼44세 연령의 주요 사망원인 중 자살이 세번째를 차지한다. 자살로 인한 사망자의 20배 이상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부터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2005년 ‘자살예방 5개년 계획’을 세우고 2004년도의 10만명당 자살사망률 22.8명을 2010년 18.2명으로 줄인다는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자살률은 2007년 24.8명, 2008년도 26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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