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우상이 된 '공공의 적'

만 감독이 3년 만에 들고 온 신작 ‘퍼블릭 에너미’(12일 개봉)에선 조니 뎁이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이 배우는 이번에는 중절모를 쓴 은행강도 존 딜린저 역을 맡아 관객들을 스크린으로 유혹한다. 톰슨 기관총을 든 채 은행 책상을 뛰어넘고,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달리는 차에 매달리는 액션도 마다하지 않는다.

영화는 딜린저라는 악인을 미화하지도 않고, 반대로 그 역시 일개 악당에 불과하다고 웅변하지도 않는다. 일부러 극적 긴장감을 가미한다거나 인물의 심리 묘사에 공들이지도 않는다. 영화는 대신 당시 상황을 충실하게 재연하는 데 집중한다. 딜린저 일당이 실제 범행했던 장소에서 당시 사용했던 무기와 차량을 활용해 촬영한 장면 하나하나에는 사실성이 넘친다. 영화는 그러면서 그저 딜린저의 탈옥 및 범행 장면과 수사기관의 추격을 따돌리는 모습을 시종 담담하게 비출 뿐이다.
만 감독의 전작에서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가 펼치는 대결구도에 흥미진진함을 느꼈던 관객들이 ‘퍼블릭 에너미’를 보면서는 몰입에 어려움을 겪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크리스천 베일이라는 명배우가 딜린저를 쫓는 수사요원(멜빈 퍼비스)으로 나서 조니 뎁과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한 명에게 선뜻 감정이입을 할 공간을 남겨두진 않는다. 동료들이 하나 둘 자기 곁을 떠나고, 수사기관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오는 걸 보면서도 특별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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